어젯밤, 진아는 룸메이트 규리에게 베개의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규리는 남자친구와 길게 통화하느라 바빠 끝내 전하지 못했다. 진아는 그저 베개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묘하게 편안했고, 어쩐지 손에 닿을 때마다 따뜻한 감각이 전해졌다.
진아는 꿈속에서 어느 한 남자의 무릎에 누워 있었다. 그 남자는 잘생긴 얼굴에 부드러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 있어. 네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야."
그 순간 진아의 마음은 따뜻함과 평화로 가득 찼다. 하지만 꿈은 갑작스럽게 깨어졌다.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고, 진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일어났다. 방문을 열자 규리가 술에 취해 남자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규리는 흐느적거리며 소파에 쓰러졌고, 남자친구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떠났다.
"진짜... 매번 이래." 진아는 규리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중얼거렸다. "자라. 너 술 깨면 나랑 얘기 좀 하자." 하지만 규리는 이미 코를 골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진아는 침대에 눕자마자 그 베개를 바라봤다. 어딘가 모르게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머리를 대자마자 진아는 깊은 잠에 빠졌다. 꿈은 어젯밤과 이어지는 듯했다.
이번에는 남자가 진아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남자친구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진아는 꿈속에서 소리쳤다.
"이게 진짜로 이루어질까?"
하지만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규리는 숙취로 인해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진아는 혼자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세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보세요."
진아는 토스트 한 조각을 베어 물며 라디오를 흘려듣다가 문득 베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베개를 처음 발견했던 거리로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진아는 저녁 시간에 거리로 나섰다. 어제 노숙자가 누워 있던 자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리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진아는 한참을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렸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 때, 노숙자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저씨!" 진아는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어제 베개를 제가 집에 가져갔어요. 내일 가져다 드릴게요."
노숙자는 진아를 보며 웃었다. "그 베개는 원래부터 아가씨 거였어."
진아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노숙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베개는 특별한 물건이야. 필요한 사람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베개지. 그 베개를 베고 자면 꿈속에서 네가 원하는 소원을 보여줘.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진아는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요? 하지만 어째서 저한테..."
노숙자는 손을 흔들며 말을 잘랐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어.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면 안 돼. 만약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베개가 검게 변하고, 그 순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진아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원을 이루려면 간절해야 해. 네가 정말로 그걸 원하는지 베개가 알 테니까."
노숙자는 진아를 한 번 더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제 이곳에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아가씨도 여기 올 필요 없어."
그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진아는 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품에 안았다. 노숙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꼭 남자친구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게 해 줘."
진아는 속삭이며 베개를 꼭 껴안았다. 그 따뜻한 촉감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안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이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질지 궁금해하며 잠에 들었다.
진아는 깊은 잠에 빠졌지만,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