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회사에서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들떠 있었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카페로 향했고, 국장은 오늘 특별히 '청춘으로 가는 길'이라는 드레스코드를 발표하며 모두가 청바지를 입고 파티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건 대표의 건배사. 밝은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건배를 하며 크리스마스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카페는 따뜻한 불빛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고, 곳곳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였다. 민규는 연주 준비를 하면서도 자주 진아를 바라봤다. 그는 매 순간 진아의 눈빛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진아는 그런 민규의 시선을 느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혜 팀장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했다.
야! 유진아! 너 뭔 일 있지?
진아는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웃으며 준비해 나갔다.
이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사장님만 도착하면 바로 시작하면 된다.
순간, 국장에게 전화 한 통이 날아든다.
국장은 경직된 모습으로 예! 예!
마지막으로 들어가십시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사장님! 참석 못하신단다!라며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환호성이다.
그렇게 파티는 시작되었다. 식사와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늘 사회를 잘 보던 영업팀장의 사회로 장기자랑이 이어졌고 진아의 순서가 되었다.
진아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섰다. 이른바 마돈나 복장. 배꼽과 가슴이 드러나는 의상으로 노래를 한다.
내사랑 어디쯤에 있나 밤은 더 외로워만 지고
진아는 노래를 부르며 진한 눈빛을 민규에게 보내고 있었다.
민규는 괜히 무관심한척 하며 바깥으로 나간다.
파티가 깊어지고, 포시즌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노래전에 민규가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운명같은 만남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야유를 보낸다.
그리고 저는 오는 이 자리에서 운명을 만났습니다.
아마 그 운명은 벌써 약 25년 전에 시작 된듯합니다.
오늘 부르는 이 노래를 유진아 기자님께 바칩니다.
오늘 이 순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제 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진아 씨, 사랑합니다."
그리고 민규가 부르는 혜화동이 카페에 울려퍼진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간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노래가 끝나고 민규는 진아에게 가서 프렌치 키스를 한다. 진아가 눈을 감는다.
파티가 끝나고, 진아는 민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거리를 걷고, 민규는 진아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며 말했다.
그리고 둘은 진한 키스를 한다.
잠시 멋적어하며
"오늘 정말... 특별했어요. 진아 씨와 함께여서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아요."
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민규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래요. 정말 행복해요, 민규 씨."
민규는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손을 놓고 말한다.
내일도 약수터 나올거죠?
진아는 고개를 끄떡인다.
민규가 아쉬워하며
돌아서려 할 때, 진아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민규 씨.
진아가 부끄럽게 웃으며
혹시... 라면 좋아하나요?"
민규는 순간 멈칫하며 진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빠르게
진아의 손을 잡고 진아의 집으로 들어간다.
눈 내린 거리는 고요했고 동네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오고 크리스마스 전야는 환하게 사랑의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