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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오 Dec 21. 2024

#기억 소환

오늘 낮, 진아는 민규를 만났다. 1차 취재를 마친 뒤 크리스마스 파티를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며, 동시에 민규를 조금 더 알아갈 기회로 삼으려는 마음도 있었다. 더구나 민규가 일부러 진아의 라이프 잡지사 근처까지 와주었기에, 그녀는 은근히 설렜다.


민규가 속한 밴드 이름은 포시즌이었다. 재미있게도 멤버는 다섯 명이었다. 처음에는 네 명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건반 연주자가 합류하며 다섯 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사회로 나가며 한동안 잘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민규가 동네에 카페를 차리게 되면서 다시 의기투합하며 밴드를 재결성했다.


“중학교 때 이 동네로 이사 왔거든요. 그래서 여기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사귄 애들밖에 없어요.” 민규는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음악 스타일은 포크락으로, 예전에 인기 있었던 동물원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했다. 민규가 직접 설명하며 진아에게 자신들의 정규 음반 두 장을 내밀었다.

"이건 우리 밴드가 낸 앨범이에요. 한 번 들어보세요."


진아는 깜짝 놀라며 음반을 받았다. “이렇게 귀한 걸 주시면 어떡해요? 전 준비한 것도 없는데… 너무 죄송하네요.”

민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뭘요. 저야말로 요즘 계속 신세 지고 있는데요.  카페 매출도 올려주시고."


진아는 그런 민규의 여유로운 태도가 편안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받기만 하는 건 아닌지 살짝 미안했다.


취재를 마친 뒤, 진아는 회사 근처의 다른 단골 카페로 미를 데려갔다. 커피를 주문한 뒤 민규가 물었다.

"진아 씨는 어릴 때도 음악 좋아했어요?"


진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어릴 때는 노래 부르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 독창도 하고 그랬죠."


민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반짝였다.

"혹시... 진짜 오래된 얘긴데, 학예회 때 독창했던 거 기억나요? 제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진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인천에 있었거든요. 중간에 서울로 전학 갔어요."


민규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인천 창영 초등학교? 혹시 창영 초등학교 아니었나요?"


진아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민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 학교 나왔어요. 진아 씨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그때 정말 노래 잘 부르던 친구였잖아요."


진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민규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그럼 우리가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근데 왜 처음에 몰랐죠?"


민규는 잠시 멈칫하다가, 옛 기억을 더듬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나 기억나요. 어릴 때 널 좋아했었죠. 학예회 때 진아 씨가 무대에 나와 노래 부르던 모습도 선명하게 기억나고... 하루는 진아 씨가 인기 많아서 용기 내 향수 지우개 선물하려 했는데, 갑자기 교실에서 뛰쳐나갔어요."


진아는 깜짝 놀라며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아... 그날... 부모님이 교통사고 나신 날이에요. 그래서 전학 가게 됐고요. 민규 씨가 그런 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진아는 그날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울컥했지만, 민규가 그 기억을 이렇게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민규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때 진아 씨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 이후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신기하네요."


진아는 민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세상이 참 좁다는 말이 맞네요."


한참 대화를 나누고 둘은 함께 집으로 향했고 민규는 진아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민규는 내일 약수터에서 봐! 내일부터는 말 놓는다!


진아는 돌아가는 민규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진아는 그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민규의 기억을 해보려 했지만 진아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진아는 소원 베개를 안고 말했다.

마치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지금 심장이 너무 뛰고 있어!


창밖에는 진아의 마음을 아는 듯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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