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는 그날, 택시를 몰고 여전히 한적한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코로나의 그림자가 드리운 서울은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낮에도 고요하게 느껴졌다. 다만 오토바이 배달부들의 소리만 도로 위에서 연주하는 듯했다.
기호는 차창을 통해 펼쳐지는 텅 빈 거리를 보고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거리에는 간헐적으로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것 외에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대엔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길모퉁이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을 텐데, 지금은 모든 게 무기력하게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기호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까?"
그의 현재 직업이 택시 기사인만큼 고요한 거리는 바로 매출로 이어져 있기에 그는 걱정스러웠다. 그럴 때일수록 택시 안에서는 라디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각종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빠져드는 기호는 한동안 음악 속에서만 살고 싶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변해버렸지만, 음악은 항상 그를 붙잡아 주는 유일한 것 같았다.
기호는 차를 몰고, 한강을 넘어서 이태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씨가 무더워서 에어컨을 켰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오늘은 여느 때처럼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는 하루일지 몰라도, 그 시간 속에서 뭔가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더 열심히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 음악만이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신호등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토바이 한 대가 기호의 눈에 들어왔다. 헬멧을 쓴 채 빠르게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잠시 멈춰 섰다. 기호는 첫 번째로 눈에 띈 그 오토바이의 주인공이 여자임을 느꼈다. 여자는 확실히 마스크를 쓴 채였지만, 그 강렬한 음악을 들으며 흔들리는 몸짓, 그리고 그 헬멧 아래로 보이는 모습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느꼈다.
그 여자가 바로 그 음악을 들으며 주위 세상과는 다른, 또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호는 그런 존재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잠깐, 그 여성은 고요한 거리에서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기호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또 하나의 신호등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은 음악에 대한 갈망이었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제대로 음악을 나눠 볼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음악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연은 잠시 그를 쳐다봤다. 기호의 말을 들은 뒤, 살짝 웃으며 헬멧을 벗고, 고개를 돌리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엄지손가락?" 그 여자의 반응에 기호는 잠시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순간,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유쾌하게 다가왔다.
"음악은 정말 좋아하죠, "라는 의미처럼 여자는 마스크 속에서도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소리쳤다. "저는 그냥 오토바이로 내리막길을 타며,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걸 좋아해요."
기호는 그 여자의 모습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찾고 있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오직 그가 혼자서만 느껴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야 할 것이었다. "혹시, 음악 하세요?" 기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여자는 잠시 그를 보더니 마스크를 내리며 다시 입모양을 읽어 보았다. "락커세요?"라고 물었다.
기호는 그 질문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락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밴드를 했었고, 요즘은 그냥 음악을 듣기만 해요."
그러자 신호가 바뀐 탓에 뒤차들의 경적소리가 귀를 찔렀고 그들은 헤어져야만 했다.
순간 여성은 소리를 치며 "알았어! 간다고"
다음 신호등까지 그들은 그렇게 서로 운전을 하며 소리를 지르며 대화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저도 락을 좋아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장르를 많이 듣고, 가끔씩은 나만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죠."
기호는 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은 사람을 표현할 수 있게 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기호도 창을 열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럼요. 음악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죠." 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만, 지금은 오토바이로 길을 떠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기호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렇군요. 음악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네요.”
다음에 만난 신호가 바뀌면서 나연의 오토바이는 좌회전을 해서 갔고 기호는 잠시 그 여자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야릇한 기쁨을 느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없었고,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음악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음악에 대한 욕망은 다시 한번 자신을 불러일으켰고, 기호는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텅 빈 거리를 지나며 새로운 에너지를 찾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