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7시. 이태원은 여전히 고요했고,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거리를 감쌌다. 기호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배고픔이 밀려왔다. 택시를 멈추고, 늘 가던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그곳은 아직 몇 명의 손님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기호는 소박한 메뉴판을 보며 그중 하나를 고르기 시작했다. 피로에 지친 몸이지만, 국물 한 그릇이 간절했다. 기호는 주문을 마친 후, 테이블에 앉아 고요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가게 안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 와중에 문이 열리며 여자가 급하게 들어왔다.
그녀는 앞치마를 급하게 묶으며 바쁘게 움직였다. 손님을 맞이하는 일 외에도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기호는 잠시 그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식당 안의 테이블을 돌며 주문을 받았고, 서둘러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일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만 실수로 음식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쟁반 위의 뜨거운 국물이 기호의 바지에 쏟아졌고, 기호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녀는 당황한 듯 서둘러 기호에게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서두르다 보니...”
기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큰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미나는 자꾸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반복했다. 바지를 보고는 눈치를 채고, 급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얼른 끝나고 보상 처리 해드릴게요.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바로 변상하겠습니다.”
기호는 잠시 생각한 후,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미나에게 건넸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나는 명함을 받아 들고,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끝나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기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배가 많이 고프니 해장국이나 많이 주세요.”라며 웃어 주었다.
미나는 급히 다시 서빙을 하러 가면서, 기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렇게 서둘러 일을 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같이 느껴졌다. 잠시 후, 국밥이 나오자 기호는 한 숟갈 떠서 마셨다. 국물이 뜨겁고 시원해서 그의 몸에 점차 에너지가 돌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때로는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기호는 밤새 운전으로 지친 피로도 조금 풀린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기호는 다시 평소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루를 마친 그는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기호는 잠시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미나의 이름이 뜬 것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그때 해장국집에서 만났던 알바 직원, 미나입니다." 미나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듯했다.
기호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그때의 그 상황이 기억나네요."라며 웃어 주었다.
"정말 죄송했어요. 그때 음식을 엎어서…" 미나는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그날 이후로 계속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별거 아니었어요. 괜찮습니다." 기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화드려서 죄송하고,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미나는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했다.
기호는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 "괜찮아요. 그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더 좋았어요."
미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사장님, 혹시나 후에라도 변상해 드리려고 했는데…"
기호는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라고요?" 미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았다.
"아, 죄송해요. 그냥 그렇게 말했네요. 사장님이라니… 그렇게 부르셔도 되지만, 사실 저는 그냥 기사예요." 기호는 웃으며 말했다.
미나는 조금 당황하며 다시 말했다. "아, 기사님! 그렇다면 기사님이시군요.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기호는 다시 웃어주며 괜찮다고 전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명함 주신 걸 보고,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그래도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더 조심히 일할게요." 미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별거 아니에요. 일하다 보면 그런 일도 생길 수 있죠." 기호는 덧붙였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시니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미나는 잠시 침묵을 깨고, 조금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도 음악을 좋아해서… 그날 명함을 보고, 음악을 해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저도 키보드 좀 쳤거든요."
"밴드 경험이 있다고요?" 기호는 조금 놀라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꿈을 포기해야 했고, 아이도 키워야 해서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명함을 보고, 그쪽과 무언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나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기호는 잠시 생각했다. "마침 우리가 지금 키보드를 구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너무 오래 쉰 상태라.... 연습할 시간도 부족해서 고민 중이에요." 미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호는 그 말에 조금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조금씩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바로 공연을 하진 못할 수도 있지만, 작은 걸음이라도 시작할 수 있잖아요?"
미나는 기호의 말을 듣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나네요. 사실 그냥 꿈만 꾸던 상황이라 정말 막막했었거든요."
"음악은 열정과 희망을 갖고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언제든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줄게요." 기호는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기사님." 미나는 감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쉬는 날 먼저 연 락 주시면 나중에 만나서 더 이야기 나눠봐요." 기호는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정말 감사해요, 기사님." 미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