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담백한 삶을 공유하던 분이셨지. 보리빵과 소금 그리고 돌밭에서 만날 시원한 샘물 너를 위한 말린 무화과와 너의 땀을 식힐 포도나무 그늘을 마련해놓으셨지.”
나그네는 시린 무릎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더위로부터 멀리 떠나버린 공상에 잠긴 채로 발을 내디딜 때 이 여정에 끝이 있다는 건 너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될 거란 걸 알아. 밤마다 별빛이 가득한 하늘에 등을 진 채로 눈물을 훔치던 너의 손을 기억해
언젠가 너를 만나면 나도 왈칵 쏟아 버릴지 모르지만 그날엔 차게 식어가는 너의 손을 꼭 잡아줄 게. 너무 보고 싶었다고, 고생 많았다고.
찢기고 뜯겨버린 너의 발을 감싸 쥐고 향기로운 기름으로 쓰린 상처마다 씻겨줄게
너를 만나는 날이 나의 혼인식 날이 될 거야 멀리서부터 밝혀온 등불을 따라서 와. 밤이 너무 어두우면 무릎을 꿇고 기도할게. 너를 위해 오늘 밤은 별빛을 조금 더 밝혀달라고 기도할게. 그날엔 변하는 달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별을 따라서 오면 돼.
발걸음마다 너를 위해 기도할게. 견딜 수 없을 땐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봐. 말없이 걷는 발자국 소리가. 너를 떠난 적 없는 나의 기도라는 걸 알게 될 거야
필요할 때마다 나를 돌아봐주면 돼. 네가 알지 못할 때라도. 너를 위한 새하얀 구름으로 따라갈게.”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 매번 그가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몰래 카드 하나를 가져왔다. 그는 그 탓에 편지를 한장 더 써야했다. 그는 성탄절에 나눠주는 편지이니 만큼 성자에게 이입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자의 말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새벽이 되어 나그네와 함께 한강을 찾아갔다. 캐나다 유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의 손은 어느덧 난간을 붙잡고 멈춰있었다. 강 건너의 야경이 그의 눈가에 비춰 보였다. 그 눈물이 순수한 만큼 선명하게 그는 빌딩 사이로 비치는 사람들의 불빛들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행인을 위해 준비된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그는 위로가 필요했던 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껏 울 수 있는 품을 내어준 사람이었다. 우리가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며 땅을 치고 울고 있던 순간마다 성자는 말없이 우는 이들의 옆자리를 지켜오셨다.
세상을 위로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누구보다 마음이 아프지 않으셨을까? 세상을 다 품을 만큼 사랑했다면 그분은 짊어지려고만 하셨을 뿐 어느 누구도 그분을 위해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별을 쫓아 광야 위를 걷는 이방 나그네의 여정을 지켜주셨던 그분이야말로 가장 외로우셨던 게 아닐까 하고. 선선한 바람에 땀이 말라 갈 때쯤 그는 이제 눈물을 흘리며 지그시 기도를 읊조렸다.
그날 우리는 대교를 다 건너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걷기만 했다. 바람에 흔들리던 잡념은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가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는 것을 반복할 때마다 내 머리를 가득 덮었다가 다시금 헤드라이트를 따라서 멀어져갔다.
그는 자신의 눈물을 충분히 묵상할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모두가 의지하고 따르던 그의 이면에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가장 두려워했던 어린 소년의 모습이 감춰져있다. 우리는 아플수록 강해 보이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기대어오는 사람들을 내치지 못하지만 내 아픔을 눈치 채준 사람들보다는 더 사랑해주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는 아플수록 강해 보이려고 한다. 고개를 들어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별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해왔다. 위로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은 투명할지 몰라도 그 겉모습은 누군가 남기고 간 흉터로 거무죽죽하게 얼룩져있다.
기대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에게 어깨를 내어줄 그루터기가 필요한 법이다. 아픔을 당해본 사람은 타자가 겪게 될 아픔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유달리 강해 보였던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한다.
성자가 다녀간 세상에서. 성자가 다녀가야했을 그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