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마냥 돕고 사랑할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에서는 그게 종교적일수는 있지만 성경적이진 않더라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고백하고 믿는 예수라는 분은 너의 태어난 모습 그대로, 나고 자라온 모습 그대로 너가 너인채로 살아온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신다는데 너의 영혼 지금까지 구성된 너의 인격을 말이야.
물론 내 말이 기성 기독교의 입장과 다르거나 그분들에게 거슬릴 수 있겠지만 난 언젠가 너에 관련된 설교를 쓰고 가르침을 전해볼 생각이야 그렇게 해서 내 주변에 남는 사람들이 그동안 종교하면 떠오르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면,너보다 더 심했던 세리나 창녀의 친구라 했던 예수님 처럼 내가 설교를 전하는 이들도 그런 이들이겠지.”
“깨끗한척 하는 정장 빼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헐벗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말씀이 있어야할 곳에 말씀을 전하는 그런 사역자가 되고 싶어”
그는 나의 말을 이어 자신의 말을 전했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단 말은 말씀에 있어야할 내 자리는 정말 추하고 악한 곳이었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거야. 그래서 나는 그곳 교회를 떠나기로 했지. 내가 그러는 동안 내가 믿던 성자는 나의 아름다운 성전이 아닌 그 성전의 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그의 일에도 나름의 철학이 있고 표현이 있고 어느정도의 예술이 있었다.
“너가 너인채로 너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언젠가 너를 찾는 말씀을 가지고 찾아갈게. 들으면 아프겠지만, 무심결에 가장 원했던 빈자리를 채워줄 눈물나는 이야기가 있을거야”
오랫동안 고민해온 이야기를 이제 정리해서 쓰려고한다. 깨끗하지 못했던, 떳떳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성자 곧 말씀은 그것이 있어야할 곳에 육신으로 거하셨다
말씀이 있어야할 곳은 우리 가운데 였다. 성자는 아픔과 죄악에 가득한 곳에 있어야했고, 성자는 그곳을 사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 말씀은 이곳에 있었다. 성자가 다녀간 세계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요한복음 1:1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