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함께 지하철 봉사를 하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라인을 담당하며 빵과 음식을 나눠줬었다.
마주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이가 있었다. 당신은 이들 앞에서 성자를 찬양할 수 있는가?
가까이 다가가니 온갖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틀림 없는 사람의 냄새였다.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오느라 몸에 배어버린 냄새였다. 그래서 싫어할수가 없었다.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배식도 중단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매일 밟고 지나간 이곳의 바닥은 차가웠고, 닫혀버린 마음은 너무나 굳어있었다.
한 아저씨는 빵을 받자마자 등을 돌렸다. 세상이 이들에게 등을 돌렸는지. 이들이 세상을 등졌는지.
사람의 마음을 병들어 죽게하는건 위선적인 동정도 아니고, 멸시의 시선도 아닌 차갑게 굳어버린 무관심한 일상의 통행로였다.
수많은 이들이 출퇴근하는 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 더러는 자신을 위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관심과 마음을 주고 받지 않고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들은 지하철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다. 홀로 잠드는 이들은 자기 고집이 몸시 강하거나 정신이 아주 나가버린 이들이라 하였다. 표현이 다를뿐 마음이 몹시 망가져있어야만 사람은 홀로 잠을 청하는 것이겠다.
이런게 봉사냐고 술에 취해 마음속의 역정과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럴때는 어떻게 대처하나 여쭤봤지만 할말이 없다 하였다.
날이 추웠다. 추우니까 찾아갔다. 시국이 소란했다. 그러나 남대문역을 찾는 봉사자들의 발길은 소원해졌다. 조용했다. 그래서 찾아갔다. 처음엔 무어라 기도할지 짧은 문장 조차도 쉬이 읊조리지 못했다. 출구가 가까워지면서 바구니는 가벼워졌다. 그제야 기도할 말들이 떠올랐다.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살아가게 해달라고. 언젠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이들이 우릴 찾아오고 우리가 이들을 언제든 찾아갈 수 있게해달라고 나는 기도했다. 비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빌어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굳고 차가워진 상류층의 대한민국 교회의 문고리에 등을진채로, 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서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옵소서. 나와 같은 악독한 위선자의 발걸음을 멈출 작은 관심을 이 길목에 내려주시라고 나는 집으로가는 2호선 위에서 단촐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