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운전거부자(?)에게 가장 난감한 상황은 자차로만 갈 수 있는 곳에 가야 할 때이다.
굳이 택시는 안 타고 싶고... 그럴 때 지인찬스는 너무나 고맙다.
교회에서 야유회를 간다는데, 우리 가족 중에 나와 막둥이만 가기로 했다. 나머지 셋은 집에서 뒹굴거릴 예정이라 가려면 차를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 가족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우리 둘이 끼어서 탈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예전엔 이런 상황이면 그냥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끼리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데 굳이 같이 차를 타자고 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내가 운전을 하는데 만약 자리가 남는다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기꺼이 태워준다'라는 답이 나왔다.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좋고, 기왕 차를 움직일 거 같이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자리를 물색했다.
기왕이면 가까운 곳에 살면 좋겠고, 멀미를 하는 막둥이가 되도록 편할 수 있고, 나도 오가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나름의 조건으로 말이다.
실상은 조건이고 뭐고 같은 단지에 사시는 집사님 내외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하필, 전날 늦은 시간에 진한 커피를 마시고 한밤중에 속이 뒤집어져서 자다 깨서 몇십 분을 낑낑대다가 약 먹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인 게 '갈 수 있을까' 싶었으나 지난번에 같이 가기로 했을 때 막둥이가 갑자기 아파서 결국 못 갔던 빚(?)때문일까. 웬만하면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 계속 마시면서 속을 달래고, 배를 따뜻하게 해 주려고 핫팩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막둥이가 좋아하는 콜라겐 젤리 두 봉, 구운 계란도 나눠먹을 만큼 챙겼다.
준비하다 보니 약속 시간이 임박해서 안 좋은 컨디션에 집에서부터 단지 앞 편의점까지 뛰었다.
같이 가기로 한 집사님 내외 중 여자 집사님이 엊그제 꼬리뼈를 다치신 상태였다. 차에 타자마자 내 배에 대려고 했던 핫팩을 집사님께 내밀었다.
"이거 나 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정말 따뜻하고 좋네요."
하시는데, 말문이 막혔지만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둥이 간식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이미 준비해 왔다며 젤리 한 봉 드리고 아침 드셨냐며 계란도 드렸다.
가다 보니 오늘이 절친의 생일이란 게 생각났다.
'한밤중에 너무 아파서 깜박 잊어버렸네.'
좀 이따 야유회에서 만날 텐데 그냥 넘어가긴 아쉽고, 편의점에 들러서 오예스랑 초라도 사자 싶었다.
"집사님, 혹시 가다가 편의점 나오면 잠시 내려주실 수 있으세요?"
사정을 얘기하고 그러마고 했으나 갈수록 외진 곳으로 들어갈 뿐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야유회장에 거의 도착해서 길가에 '베이커리&카페' 간판이 나타났다.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로 뛰어들어갔다.
친구가 좋아할 만한 자그마한 케이크를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집사님 내외가 좋아하실만한 빵도 눈에 띄었다. 케이크와 빵 두 개를 계산하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차로 돌아왔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폭신해 보이는 수제 팥빵을 내밀었다.
그날 집사님 내외와 야유회장에서 마주 보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미나리 전을 못 먹어봤다고 했더니, 혹시 생기면 나눠줄 테니 집 앞으로 오라고 하신다. 같은 단지 산다고 하면서도 왕래가 없었는데 조금 친해진 듯하다.
그동안 지인찬스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구나. 앞으로는 어디에 갈 때 나의 시간적 물리적 가치가 절약되도록 카풀을 해주는 사람에게 나도 그만큼의 고마움을 표현해야지. 기왕이면 나를 태워줬던 시간을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어차피 카풀을 피할 수 없다면 오늘처럼 즐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