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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하는 뚜벅이

중요한 촬영 전에는

by 엄살

"자기야, 나 이번 주말에는 특별관리(?) 들어가야 하니 평소보다 먹는 거 좀 자제할게."

"하이고~ 그러시든지요."

주말마다 남편과 사부작거리며 뭐라도 먹는 재미로 주말을 보냈는데, 이번 주말은 그러기는커녕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하필 교회 성가대 회식일정도 있었는데, 원체 성가대 회식을 자주 하지 않는 데다 인원도 적어서 나 하나 빠지는 게 크다. 이래저래 관리하기 쉽지 않도다.






한 달 전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내월간지에 동료들과 함께 표지모델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표지 콘셉트 참고 사진과 함께 온 문자 메시지엔 '촬영 전날에 너무 많이 먹으면 부어서 결과물이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처음엔 설마 촬영 전날인데 많이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웃고 넘겼는데 웬걸. 내가 그 입장이 되니 안 당기던 음식들이 마구 당기는 게 괜히 부담스럽고 빨리 지나갔으면 싶고, 마음이 간질간질하니 주말 동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워낙에 멜라닌 생성이 잘되는 피부라 4-5월부터 걷고 자전거 타고 하면서 슬슬 타기 시작해 6월이면 수영장 다녀왔냐는 얘기를 해마다 들었다. 나이가 드니까 그렇게 타는 게 좀 부담스러워졌달까.

'나도 하예 봤으면...'

자발적 대중교통이용자이자, 자전거 통행자이며, 걷는 사람이 바라기엔 욕심이 과한가?


촬영이 다가오자 자꾸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나 자기랑 나가면서 얼굴 다 가려도 괜찮지? 내일모레 촬영이라 그래."

"괜찮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나쁘지 않아."

"카메라 앞에 서는데 되도록이면 정돈된 모습이면 좋잖아. 피부에 잡티도 좀 덜 있고, 되도록 타지 않게 주의하고."

"연예인 김혜수는 썬그란스를 항상 쓰고 다닌대. 그래서 그런지 눈이 정말 예쁘고 맑잖아."

"맞아, 썬그란스 계속 쓰는 것도 쉬는 게 아닌데, 대단해."


주말에 요리할 식재료를 사러 가면서 선크림만 바르고 나왔는데 그게 영 마음에 걸려서, 오후 외출엔 필히 모자를 쓰고 나가리라 다짐한다.

회식이니 밥도 먹어야 하고, 후식도 먹어야 하는데 이거 참.. 관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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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전에 산책한 파주 공릉천변 튤립


촬영 전이고 뭐고 남편은 마트에서 산 알타리로 김치를 담그시겠다고 해서 저녁 늦게까지 보조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촬영에 손도 나온댔는데 칼질하다가 혹시나 실수할까 봐 노심초사. 그럼 뭐 하나. 쪽파에 대파에 온갖 이파리 다듬고 손에 물이나 안 들면 다행이다. 설거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해도 해도 계속 생기는 마법. 아이들이 클수록 입이 무섭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렇게 설거지를 다 끝내지도 못한 채 주말이 갔다. 스킨케어는커녕 자기 전에 세수나 제대로 하고 자면 다행인 신세라니...


촬영 전날도 목표는 그저 푹 자는 거라 슬리핑 팩만 듬뿍 바르고 잤다.

당일 목적지는 현재 제일 핫하다는 '성수동'. 큰아이 시험 마지막날이라 얼굴만 살짝 보고 따끈한 계란찜을 만들어 둔 채 먼저 나왔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gtx운정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했다. 얼굴엔 선크림만 바르고 모자를 눌러썼다. 가는 내내 피곤해서 눈은 충혈되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성수동에 도착했다. 분명히 지도에는 카페거리 옆이라고 했는데, 거리에는 '우르르르' 소리와 함께 죄다 뭔가 고치고 있거나 공사장이다. 골목을 걸어가는 동안 입고 간 옷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어린이 공원 옆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건물이 스튜디오였다.

'아이고, 여기로 찾아오는 것도 되다.' 이 몰골로 촬영장에 들어가는 게 창피하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가려는데, 같이 촬영하는 서울에 사는 동료 남자 직원의 모습이 쓱 비쳐서 나도 모르게 숨었다.

거울을 보며 아무리 수습해보려 해도 안 되는 모습으로 모자를 고쳐 쓰고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모자 안 벗으세요?"

"아, 지금 머리가 엉망이라 좀 이따 화장할 때 벗으려고요. ㅎㅎ"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랴.

촬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끝났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을 뿐.


촬영이 끝나고 쏜살같이 귀가했다. 끝났다고 좋았던 건 잠시고, 쌓여있는 설거지와 엉망인 집안의 몰골에 한숨이 나온다. 이게 현실이지. 잠깐 스쳐가는 기적적인 순간은 잠시 누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거야.


그래서, 뚜벅이는 진정 피부가 하얄 수 없는가? 이번 여름에는 어떻게 좀 비껴가보고자 선크림만 잔뜩 쟁여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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