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혹시 카멜레온!?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식날이다. 첫째 땐 처음이라 졸업하는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더 긴장해서 아침에 아이 챙겨 보내고 부랴부랴 준비하고 갔었다. 얼굴은 평소보다 진한 화장으로 힘주고, 굽 높은 구두 신고 다녀온 지 2년 만에 둘째의 졸업이었다.
확실히 두 번째가 되니 긴장보다는 여유가 느껴진다. 아이가 일찍 오라고 당부해서 식 시작하기 30분 전에 갔더니 앉을자리도 있었다.
"우리 앞으로 일찍 다니자. 앉으니까 엄청 편하네."
지난번 졸업식에서 내내 서있다가 앉아 있으니 남편도 편한가 보다.
이번 졸업식의 사전공연 콘셉트는 춤과 영상. 총 다섯 반 중에 두 반은 각 반의 대표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고, 나머지 세 반은 학생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배경음악으로 들려주는 가요가 비슷비슷한 분위기였는데, 남편의 해설로는 'QWER' , '뉴진스', 'DAY6' 란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선생님들도 영상을 보면서 입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이 노래를 다 아시는구나.'
엄마로서 아이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래라도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즐겁게 졸업식을 관전했다.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첫째 때와 같은 부분은 전교생이 모두 한 명씩 무대 위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는 모습이다. 6학년1반 1번 000가 무대에 올라가면 화면에 그 아이의 얼굴과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띄워진다. 특정한 학생만 상을 받고 나머지는 들러리 같은 졸업식 대신, 전교생이 한 번씩 집중을 받는 형식이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는 의미로 보였다.
우리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잘 웃고 잘 울고 연체동물처럼 몸을 움직이고 희한한 소리를 잘 내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침대로 기어올라가 거기서 공부도 잠도 다 해결하는 사랑스럽지만 독특한 아이. 6학년 정도 됐으면 친구들이랑 합체해서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어 할 법도 한데, 하교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나를 안아주는 아이를 보면서 걱정도 염려도 눈물도 많았다. 다행히 6학년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내내 신경 써주셔서 한 해 동안 많이 밝아지고 건강해졌다. 5학년 때는 일 년 내내 왕따 비스름한 경험을 했는데, 그걸 말을 안 하고 버티다가 학기말에 터져서 해결해 나가며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해 준 시간을 보냈었기에 더욱 감사했다.
언니가 졸업식 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리본핀을 꽂고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는 아이를 보며 그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옆에 있던 남편도 비슷했을 것이다. 우린 이 모든 것을 같이 겪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 학부모회장님, 운영위원장님의 말씀순서는 있는데 답사는 사라졌다. 졸업가 대신 교가를 부르고, 빈자리에는 가요가 채워졌다. 남편이랑 수군거리며 희한하다고 키득거렸다.
갑자기 신기한 느낌이 밀려왔다. 나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이해하면서 동시에 모든 일을 같이 하고 특히 경조사에서 함께 있을 때면 든든한 느낌을 주고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다. 친구 같기도 하고, 남편 같기도 한...(말은 앞뒤가 안 맞는데 이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남편, 모든 집안 행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 다음 졸업식도 같이 갈 거지?"
"응? 갑자기 무슨 얘기야?"
"응, 그냥...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
"뭐가?"
"모든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아는 사람과, 꼭 가야 하는 중요한 자리에도 같이 갈 수 있어서... 나 혼자 가면 많이 심심할 거 같거든!"
그는 앞뒤가 안 맞는 내 말에 씩 웃는다. 나의 이런 화법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