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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Sep 15. 2023

작품에 투자하라


돈 잘 버는 작곡가는 없다

#6 작품에 투자하라


<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을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다. >



        내가 돈을 못 모으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단순한 것 같다. 첫째로 [돈을 모을 만큼 많이 벌지 못하고 있는 것] 둘째로 [음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음악에 투자하는 지출이 큰 것]


첫 번째에서 '많이 번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애매하니 차치하고, 두 번째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앨범을 발매하려면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앨범 자켓, 즉 표지 이미지이다. 고등학교 전공이 웹디자인 쪽이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 같은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안다. 그래서 자켓을 직접 만들 때도 있지만 주로 외주를 맡기는 편이다. 어느 드라마에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제"라 하지 않는가. 음악에 신경 쓰기도 벅차니 디자인 같은 다른 분야는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스트레스가 적다.


그러한 작업은 주로 일러스트레이터 103layers(*줄여서 백삼이라 칭하겠다)에게 의뢰를 하고 있다. 백삼과 함께 작업한 것은 8번째 앨범 <Piece of moon>이 처음이다. 당시 타이틀곡 <달의 조각을 담아>를 발매하기 전 미완성 음원을 보내주고는 앨범 자켓을 의뢰하려 하는데 혹시 가격이 얼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조금 무례했나 싶었는데 본인은 괜찮다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속마음은 모른다.


   사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기엔 별로 편하진 않은 주제라는 것을 다들 공감할 것이다. 일상 대화에서 서로 월급이 얼마냐고는 잘 묻지 않는 것처럼.


지인 중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작가님이 있다. 웹툰 제목은 <오직, 밝은 미래>이다. (지금은 완결이 났다.) 그분에게 한 번은 웹툰에 들어갈 배경음악을 부탁받은 적 있었다. 당시 의뢰를 받았을 때 그쪽으로는 경력이 없다 보니 얼마라고 금액을 얘기하기 참 애매했다. 시장가격이 대충 얼마인지 참고하려고 크몽과 같은 외주 의뢰 사이트를 여기저기 뒤져봤던 기억이 난다.


다시 자켓 이야기로 돌아와서, 자세한 금액은 여기서 얘기해 줄 수 없지만 백삼은 내 예상보다 한참 적은 금액을 말했다. 그 금액을 얘기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아마 배경음악 의뢰를 받았을 때의 나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싸니까 좋다고 바로 승낙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당시 백삼이 부른 가격의 두 배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원하는 작업물에는 충분한 금액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불한 만큼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아무튼 나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적어도 그 정도가 작업비로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입금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시안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삼은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두 배를 지불했으나 그보다 몇 배의 결과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고요한 밤바다의 색부터 달의 조각이 작은 유리병에 담겨 바다에 떠내려가는 부분들이 참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색감만 푸른색으로 한 번 조정해서 확정하고 순조롭게 발매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그 후로도 여러 앨범의 커버 작업과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함께 하는 중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번 책도 함께 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규삼 작가님의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에피소드 중 하나가 생각난다. 사업에 실패한 묵 업체 사장의 이야기이다. 곧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어서 목숨을 포기하려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목숨을 건지고 주인공(천리마 마트 사장이자 뛰어든 차의 운전자)을 만나게 된다. 묵 업체 사장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하게 된 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다 우연히 주인공이 마트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리마마트에 납품할 도토리묵 가격을 다른 곳보다 싸게 공급하겠다고, 납품하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러자 갑자기 주인공은 오히려 묵 납품가를 세 배로 올려주겠다 제안한다. (웹툰을 보면 알겠지만 그런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그러한 결정에 감동받은 묵 업체 사장은 집안에 내려오는 비기를 이용해 그 가격에 걸맞은, 엄청나게 맛있는 명품 도토리묵을 만들어와 마트에서 판매한다. 이후 그 묵이 큰 인기를 끌어 한국에 왔을 때 꼭 먹어야 할 음식에 선정, 방송도 타고 상도 받았다는 해피엔딩.


이처럼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을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다.


아쉽지만 오늘날에도 "열정페이, 지인이니까 할인 혹은 공짜"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감사는 말로만 하지 말고 돈으로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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