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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란 Nov 18. 2024

영적 수행의 유니폼-사리, 도티

인도(베다)의 전통 복장

12년 전 호주에 있는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행자들이 입고 있었던 복장이었다. 여자는 배꼽이 드러나는 짧고 달라붙는 상의에 긴 천을 몸에 둘둘 감아서 드레스처럼 만든 인도식 전통 여성 복장인 사리를 입고 있었고, 남자는 주로 흰색의 천을 감아 만든 바지인 도티라고 하는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다. 백인이 나풀나풀거리는 인도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게 그리스 신화 같은 느낌이 들어 기묘하게 잘 어울렸다. 또 기묘했던 것은 이렇게 종교적인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과거 생활의 흔적인 듯한 커다란 타투와 피어싱이 드러나는 수행자들이었다. 



사리와 도티는 아무런 봉제를 거치지 않은 순수하고 긴 천 조각이다. 그래서 이 베다의 철학과 문화가 서양에 처음 전해졌을 때 갓 입문한 수행자들은 침대 시트를 쓰기도 했다. 봉제 과정을 거친 기성복에는 바늘땀에 미세한 먼지와 오염이 쌓이게 되는데 사리와 도티에는 아무런 바늘땀이 없기에 기성복보다 청결하다. 그래서 높은 청결 기준을 따라야 하는 사제들은 이 복장을 필수로 갖춰 입는다.


베다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는 인도에서는 오늘날에도 전통 복장인 사리와 도티를 입는 사람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특히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게 더 중요시되기 때문에 전통 복장을 입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더 높다. 도시보다 시골에 이런 전통 복장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심지어 공사장에서 벽돌 등을 머리에 얹어 나르는 노동을 하는 여성들도 사리를 입고 일한다. 


개인적으로 수행 생활에 입문했을 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사리였다. 수행 생활 전에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옛날에 입었던 옷들을 포기하는 게 어려웠다. 사리를 입는 데 최소 5분이 걸리는 게 시간 낭비 같았고 더운 여름에 천을 감아 입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영적인 문화를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 지금은 사리를 기꺼이 입고 있다. 


이 전통 복장은 엄밀히 말하면 인도에서 온 것이 아니다. 사리와 도티는 영계에서 내려온 베다 문명에서 비롯된 복식으로 신과 영계의 거주자들이 입는 옷이다. 그러므로 이 복식은 영적 수행자의 유니폼이기도 하다. 경찰이 경찰복을 입을 때와 사복을 입을 때 몸가짐과 정신이 달라지듯이, 영적인 유니폼을 입으면 몸가짐이 달라진다. 사리와 도티를 입음으로써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영계를 스스로 떠올리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를 상기시켜 준다. 기성복과는 달리 입는 과정에 시간과 정성이 들기에 헌신과 수행의 요소가 가미된다.


사리와 도티는 이렇게 영적, 수행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실 매우 실용적이다. 제봉이 되지 않았기에 부피가 덜 나가고 개기가 쉬워 여행 짐을 쌀 때 매우 편하다. 이 옷들은 인도에서 세탁기 없이 생활할 때 특히 빛을 발했다. 손빨래하고 대충 짜서 널어도 정말 잘 마른다. 사이즈 제한도 없기에 체중이 변해도 계속 입을 수 있고, 고급 원단의 사리는 대대손손 물려 입기도 한다. 


기성복은 유행이 지나거나 취향이 바뀌면 사이즈 문제 등으로 남에게 주기도 애매하고 쓸모가 없어지지만 사리는 무제한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커튼, 식탁보, 시트, 커버, 등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원단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옷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사리는 입는 게 조금 더 오래 걸리긴 하지만 상•하의 일체인 드레스와 같기에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어 오히려 이리저리 입어보고 맞춰야 하는 기성복보다 준비시간이 짧다. 비록 디자인은 한결같지만 다양한 색깔과 패턴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리는 여성의 미를 잘 드러내주는 옷이다. 말괄량이나 톰보이들도 사리를 입히면 단번에 천생 여자가 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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