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의 사회 제도 - 바르나아쉬람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질문들의 대답을 드디어 베다의 철학에서 찾았는데 좀 더 사원에 머물며 알아가고 싶었다. 여행 중이라 직업이 없었고 부양가족이나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었기에 걱정 없이 자아 탐구에 전념하며 수행 생활을 할 수 있는 적기였다.
그래도 남들은 한창 사회 생활하는 27살에 아쉬람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하며 걱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러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완전히 루저가 되는 건 아닐까? 괜히 허송세월 보내는 건 아닐까? 나중에 직업을 구하고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이는 나뿐만 아니라 수행 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쳐가는 우려와 걱정이다. 물론 속세를 떠나 영계로 돌아가는 것이 수행 생활의 목표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발 담고 있는 이 세상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베다에는 이러한 우려에 대한 답도 들어있었다.
어떤 철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실용적인 팁과 기술을 가르치지만 자아나 목표가 들어있지 않다. 어떤 철학은 자아와 존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베다는 영적으로 진보하는 수행 방법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침도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바르나아쉬람varnashrama이다. 바르나아쉬람은 현대 인도에 카스트 제도로 변질되어 차별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사실 영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물질적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이다. 바르나아쉬람은 바르나varna와 아쉬람ashrama이 합쳐진 용어로 바르나는 직업적인 의무를, 아쉬람은 나이와 삶의 단계에 따르는 의무를 뜻한다.
바르나는 본디 색깔이라는 뜻으로,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개인의 욕망도 실현할 수 있도록 고안된 소위 고대의 MBTI이다. 바르나는 총 네 가지로 나뉘는데, 영적인 조언을 하며 길잡이와 스승, 사회의 두뇌 역할을 하는 브라마나brahmana, 군인∙정치인∙관리자 등 사회 지도자 계층으로 브라마나에게 조언을 얻는 크샤뜨리야ksatriya, 농업∙상업∙축산업 등을 통해 사회에 부를 창출하는 바이샤vaisya, 자신의 기술과 예술로 남을 돕는 수드라sudra가 있다. 개인은 바르나를 통해 적성에 맞는 사회적인 욕구를 실현하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다음으로 아쉬람은 삶의 네 가지 단계를 뜻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다섯 살부터 스물다섯 살 때까지를 브람아짜랴brahmacarya(학생기)라 하여, 보통 구루guru(영적 스승)의 집에 마련된 기숙학교에 들어가 공부와 수행에 전념한다. 고대의 교육은 영적인 공부뿐만 아니라 예의범절, 살림, 직업 훈련 등 전반적인 삶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브라마짜랴는 정신적, 영적인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도록 이성과의 교류를 자제한다.
그다음 스물다섯 살부터 오십 살 까지를 그리하스타grhastha(가정인 단계)라 한다. 이 시기에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직업 생활을 한다. 이 시기는 자선이나 음식을 나누는 등 베푸는 활동과 자식을 영적인 주체로 잘 기르는 것이 주요 수행이자 정화 수단이다.
오십 살부터를 바나쁘라스타vanaprastha(은퇴기)라고 한다. 고대에는 이 시기에 부부가 성생활을 끊고 함께 혹은 따로 숲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며 수행에 집중했다. 물론 이 방법을 그대로 현대에 실천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세속에서의 성욕, 성취욕, 명예욕 등을 줄이고 영성에 집중하는 시기라는 원칙은 여전히 적용된다.
마지막 단계는 산야시sannyasi(출가기)로, 세속적인 관계와 지위, 재산을 모두 버리고 온전히 신을 위한 봉사에만 전념하는데 이 단계를 실천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산야시는 집이 없기에 여행을 다니며 영적인 수행과 가르침에 힘쓴다.
바르나아쉬람을 통해 개인은 영적인 수행 생활을 하면서도 충분히 가정을 꾸리고 직업을 얻고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를 스바다르마svadharma라고 하며, 세상을 살아가며 행해야 할 세속적인 의무를 뜻한다. 이 의무는 영적인 수행인 사나타나 다르마sanatana dharma와 같이 행해져야 한다. 보통 수행자들은 아침 시간의 대부분을 명상과 경전 공부 등 영적인 수행에 쓰고, 나머지 시간을 세속적인 의무를 행하는데 쓴다. 이렇게 하루를 영적인 활동으로 시작하면 의식이 정화되어 나머지 시간에 하는 세속적인 의무가 영적인 행위로 승화된다.
내가 거주하는 사원에도 간호사, 의사, 편집자, 디자이너, 사업가,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행자들이 있고 거의 대부분이 기혼이거나 미래에 결혼을 염두하고 있다. 독신 수행자들은 매우 드물다. 수행 생활 초반에는 불교에서처럼 출가를 하고 독신 생활을 해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세속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독신으로 수행 생활에만 전념하는 자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쉬람 생활을 갓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우려를 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수행하면서 만난 인연이 결실을 맺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결혼 제도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이것도 사실 신이 만든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시스템이 각 문화마다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인연이 저절로 찾아왔다. 암튼 결론은 이렇다. 수행 생활 한다고 해서 꼭 독신하고 직업을 그만두거나 사원에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박티 요가 수행은 외부적인 것이 아닌 내면 의식의 수련이기에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바르나아쉬람의 지침을 따르며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