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르베다에서는 체질을 세 가지 요소인 바유vayu(공기), 피타pitta(불, 물), 카파kapha(물, 흙)로 나눈다. 이를 도샤dosha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상의학과 비슷하다. 개개인은 이 도샤를 한 가지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도샤를 각각 많게 혹은 적게 가지고 있다.
바유가 많은 사람은 공기, 바람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보통 마른 체질이고 피부가 건조하며 움직임이 민첩하다. 몸에 가스가 자주 생기고 체온이 쉽게 차가워지는 편이다. 흥미롭게도 바타가 많은 사람 중에는 치아가 고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창조적이지만 집중을 잘 못한다. 이 요소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상태에도 드러나게 되는데, 마음에 바유가 증가하면 차분하지 못하고 걱정이 많아지며 잠을 못 이루게 된다. 견과류와 같이 건조한 음식이나 샐러드 등 차고 가벼운 음식은 바타를 증가시킨다.
몸에 피타의 요소가 증가하면 불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아유르베다에서는 소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를 불(아그니)로 보는데, 피타가 더해지면 소화력이 높아져 식욕이 왕성해지고 금방 배가 고프다. 피타가 많은 사람은 불빛에 민감하여 밝은 조명에 쉽게 거슬려한다. 보통 피부에 광택이 돌고, 눈동자와 머리 색이 밝은 편이다. 마음에 피타가 증가하면 화를 잘 내거나 날카로운 성격이 된다. ‘열공'이라는 말처럼, 아유르 베다에서도 지능과 아이디어, 암기력 등과 같은 두뇌 능력이 불 에너지에서 온다고 본다. 그래서 피타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암기력이 좋거나 똑똑한 사람이 많다. 맵고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은 피타를 증가시킨다.
물, 흙의 성질의 카파는 5 원소 중에서 가장 무거운 성질의 도샤로 과체중이 많다. 보통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생활을 잘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 잠이 많고 움직임이 느려 게으르다는 지적을 받는다. 눈에 흰자가 밝고 깨끗하며 치아도 희고 고른 편이다. 눈동자와 머리 색깔은 어두운 편이고 신체 중 하체가 튼튼하다. 차갑고 기름지며 무거운 음식, 유제품, 단 음식은 카파를 증가시킨다.
나는 전형적인 바타 체질인데 생식을 하면서 바타를 더욱 증가시킨 것이 문제였다. 몸 안에 공기와 바람의 요소가 더해지면서 피부가 더욱 건조해졌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잠이 오지 않았다. 매끼마다 많은 양의 생식을 먹었는데 살은 더 빠졌고 나중에는 계단을 오르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다. 그래도 오랜 검색과 공부 끝에 정착한 식단을 바꿀 용기가 나지 않았던 와중에 아유르베다를 알면서 드디어 나에게 맞는 음식을 알게 되었다. 만일 계속해서 생식을 고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전 글에 언급했듯이 아유르베다는 베다라고 하는 고대 인도의 지식 체계에서 왔다. 베다에 따르면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사와 연구, 경험과 실험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나와있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연역적인 방법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이를 각각 아로하 빤타Āroha-panthā, 아바로하 빤타Avaroha-panthā라고 한다.
우리의 감각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기에 귀납적 방법의 결론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식은 어떻게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의 아버지 나이쯤 되는 성인 남자의 유전자를 전부 뒤져도 어려울 것이고 사실 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머니라는 확실한 출처가 있다면, 그 출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쉽게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
인터넷과 책 등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은 모두 귀납적인 지식이기에 한계가 있다. 중세 사람들은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경험과 기술이 확장되면서 이 이론은 뒤집혔다. 내가 철석같이 믿었던 생식도 누군가에게는 효과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에게 맞는 식이요법은 아니었다. 혹은 단기간에 효과가 있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상적인 식단이 아니었다. (사실 아유르베다에서는 음식을 생으로 먹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베다는 아바로하 빤타 즉 연역적인 방법으로 얻은 지식이다. 베다 경전은 인간이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고 인생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내린 지식이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결함이 없다. 베다는 또 다른 말로 아뿌르셰야 삽다apauruseya sabda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원천에서 온 지식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뿌르셰야 삽다는 인간에게서 온 지식이다. 뿌르셰야 삽다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인간은 실수를 범한다(브라마Bhrama). 실수를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인간은 없다. 정말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실수를 하고, 우리는 이를 보고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역사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뤄낸 위대한 인물들이 실수를 범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둘째로 인간은 착각을 한다(쁘라마다Pramāda). 착각은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것이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밧줄을 뱀인 줄 알고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흔한 종류의 착각이다. 인류의 가장 지배적인 착각은 이 몸을 내 자아의 전부로 보고, 이 몸이 죽으면 내 자아도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99%가 이런 착각을 한다. 베다에서는 진정한 자아를 에너지와 의식의 원천인 영혼이라고 본다. 몸을 단지 껍데기일 뿐이다.
셋째로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다(까라 나빠 따바 Karaṇāpāṭava).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작은 원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보는 태양은 실제 태양의 크기가 아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접하는 태양의 크기에 대한 정보는 사실과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촉각으로는 공기를 만질 수 없고, 인간의 청각으로는 멀리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넷째로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성향이 있다(비쁘라립사vipralipsā). 단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해본 사람은 없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인간 사회를 살다 보면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베다를 알게 된 것은 혁명이었다. 그동안 검색과 독서로 얻은 지식은 늘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 이곳저곳에서 다른 말을 하고 서로가 자기 말이 맞다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베다의 지식은 완전한 출처에서 왔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끌렸다. 이제 막막한 지식의 바다를 헤매지 않아도 되니 큰 안도감마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