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작은 일 26화

멈추고 싶었던 마음까지도

by 권성선

2014년 어느 여름,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한 편의 시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때 나는 무얼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는 어렴풋이 기억난다.

“흐르다 흐르다 지쳐버리면
때로는 멈추고 싶은 것을
멈춰버리고 싶은 마음까지도 믿고
가을 강은 흐른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내 마음의 속도를 처음 자각했다.
지치고 있구나.
말없이 흐르기만 하던 내 안의 강물이 그날따라 유난히 멈춰 서고 싶어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멈추고 싶은 순간들을 만나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조차 ‘흘러야 한다’는 다짐 속에 억누른 채 끝없이 흐르려고만 했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나만의 책임처럼 떠안고,
그렇게 강물처럼 살아왔다.

11년 전, 나는 지하철역 한구석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의 나는 참 어렸다.
그런데 지금,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 시가 더 아프게, 더 다정하게 읽힌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이유도 없는 설움이 터져
타는 듯 붉은 가을 강가에 앉아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걸 조금은 알 것도…”

살아간다는 건,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 감정들과 함께
그저 한 계절씩 통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처럼,
때로는 멈춰버리고 싶은 마음까지도 믿고,
가만히 앉아 강가를 바라보며 울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그런 나를 이해하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흐르기만 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 한다.
흐름 속에서도 멈춤을 택할 수 있고,
그 멈춤마저도 내 안의 강물이 흐르는 방식이니까.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던 그날,
사실은 나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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