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자꾸 사랑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인연은 그런 게 아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
새로 만난 동료,
스쳐가는 인사에도 마음이 묻어나는 사람.
어떤 인연은 이름도 모르고 지나가지만
마음에는 오래 남는다.
예전엔 사람과의 관계도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연락하고, 챙기고, 애쓰면
마음이 움직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오래가는 인연은
그렇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억지로는 안 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최명희 작가의 이 말을
나는 나이 들수록 더 자주 되뇌게 된다.
인연은 먼 길을 돌아,
어느 날 문득 다리를 절며
내 앞에 와서 주저앉는다.
“물 한 모금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도 고요히 앉는다.
그게 사람이어도 좋고,
책 한 권이어도 좋고,
문장 한 줄이거나,
때로는 나 자신이어도 좋다.
인연은 사랑만을 뜻하지 않는다.
살아온 날만큼,
스쳐간 만큼,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인연이다.
그러니 혹시 오늘 당신 곁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물 한 모금만 건네보길.
인연은
때로 그런 방식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