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반, 출근.
밤 10시 반, 퇴근.
남들이 쉬는 시간에 일하고,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쉰다.
이 생활이 벌써 15년째다.
스물한 살, 대학 앞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됐다.
그때만 해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칠판에 필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게 즐거웠다.
새로 배우는 공식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는 일은 성취감도 있었고,
다음 날 어떤 문제를 풀어줄까 고민하는 시간이 설레기도 했다.
결혼 2년 차에 아이를 유산한 뒤, 삶은 크게 방향을 틀었다.
배냇저고리를 개던 손이 허공에 멈췄던 날, 남편과의 관계도 함께 멈춰섰다.
서로를 향한 말보다 침묵이 길어졌고, 결국 이혼으로 끝났다.
그 후로는 혼자 사는 게 당연해졌다.
지금의 루틴은 단순하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거북이 밥을 준다.
유리 어항 속, 물 위로 고개를 내미는 거북이가 천천히 먹이를 받아먹는다.
한 알, 또 한 알.
그 속도는 답답하리만치 느리지만, 한 번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물 온도를 확인하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어항을 옮겨놓으면 그제야 주방으로 향한다.
점심 겸 아침은 늘 비슷하다.
토스트에 잼을 바르거나, 전날 남은 밥을 데워 간장 계란밥을 만든다.
커피를 내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집을 나설 때쯤, 햇살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있다.
출근길 버스는 한산하다.
주말 낮처럼 조용하지만, 그건 단지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사람들의 일상과 엇갈리는 시계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히키코모리 아닌 히키코모리’가 됐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 동기들과는 오래전 연락이 꾾겼다.
관계는 귀찮았고, 끊는 게 편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그리운 건 아니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워봤다.
하지만 정을 주고받는 건 버거웠다.
반기는 눈빛과 몸짓이 처음엔 좋았지만, 돌아오는 길목에 ‘돌봐야 한다’는 책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그나마 거북이는 괜찮았다.
기대하지 않고,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모습이 꼭 자신 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거북이는 어항 안에서라도 햇빛을 받지만, 자신은 그마저도 잊고 살아왔다는 것.
강의는 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의 얼굴은 매년 바뀌었지만, 수업 시간표와 문제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식은 변하지 않았고, 정답도 정해져 있었다.
이 일의 장점은 안정성이었고, 단점도 안정성이었다.
다람쥐 체바퀴처럼, 매일 비슷한 속도로 돌아갔다.
그날도 강의가 끝나고 퇴근길에 올랐다.
비가 내린 건 아니었지만, 저녁 공기에는 습기가 묻어 있었다.
골목 끝에서 불빛이 번졌다.
비닐 천막 안에 김이 자욱하게 차 있었고,
바람에 천막이 살짝 들릴 때마다 따끈한 국물 냄새가 흘러나왔다.
천막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툭, 툭’ 소리를 냈다.
간판엔 ‘고수포차’라는 글씨.
이 길은 매일 지나던 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발걸음이 멈췄다.
학원에서 나오는 길, 학생 한 명이 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쌤, 시간 왜 이렇게 빨리 가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질문이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어쩌면 그녀의 시간도, 알게 모르게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 건 아닐까.
집에 가면, 거북이만이 조용히 그녀를 맞았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괜히 조금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었다.
천막 문을 젖히자, 낯선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작은 전구 아래, 고수가 잔을 닦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고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내줬다.
그녀는 소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렀다.
“월급도 조금씩 오르고, 강의 경력도 쌓였죠.”
웃었지만, 그 웃음엔 힘이 없었다.
“근데… 마음은 그대로예요. 오르는 게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고수는 잔을 닦던 손을 잠시 멈췄다.
유리 위에 맺힌 물기를 깨끗이 훑어내며, 눈길을 그녀에게로 옮겼다.
“오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짧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고수는 잠시 그녀를 지켜보다가 잔을 내려놓았다.
“근데… 마음이 그대로인 게 문제일까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문제 아닌가요?”
“아뇨. 더 큰 문제는, 멈춰 있는데도 불편하지 않다는 거죠.”
고수는 천천히 잔의 물기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다람쥐가 체바퀴에서 도는 건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그게 익숙해서죠. 사람도 그래요. 힘들어도, 불편해도, 익숙하면 계속 그 안에 머무릅니다. 익숙함이야말로 제일 질긴 감옥이거든요. 그 감옥에 오래 있다 보면, 문이 열려 있어도 나갈 생각조차 안 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 말을 오래 씹었다.
15년 동안 오른 건 월급과 경력뿐이었다.
마치 변수가 사라진 방정식처럼, 인생에서 변화란 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친구들도 떠났고, 세상과의 접점도 흐려졌다.
그런데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오히려 편했다.
천막 안은 조용했고, 국물 끓는 소리와 빗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그녀는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목으로 넘어가는 쓴맛을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다시 계산해봐야겠네요. 내 시간의 값이 얼마인지.”
고수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을 나섰다.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발걸음은 조금 가벼웠다.
고수는 다시 잔을 닦았다.
그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 자리에 서서,
익숙함의 껍질이 스스로 금이 가기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다음 누군가를 위해, 그 포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