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첫 소설을 출간한 택시기사

by 권성선

첫 소설을 출간한 택시기사

새벽 네 시, 차고지를 나서는 순간부터 하루는 이미 시작이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도로 위,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에 길게 늘어졌다. 와이퍼가 힘겹게 물기를 쓸어낼 때마다 시야가 조금씩 열렸다. 그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곤 했다.

“오늘도 무사히.”

첫 손님은 늘 인상 깊었다. 술에 취해 몸을 비틀며 타는 직장인, 시골집에 내려가려는 새벽 기차 승객, 혹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청년. 뒷좌석에 앉은 손님들은 잠시 그의 차 안에서만 머물다 갔다. 그러나 그 짧은 대화와 표정, 손끝의 움직임까지도 그의 눈에는 다 기록으로 남았다. 그는 핸들을 잡고 달리면서도 늘 생각했다. ‘이건 글이 될 수 있어.’

스무 해 동안 택시를 몰았다. 한겨울 눈길에서 한여름 장마 속에서 그는 늘 길 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 삶 속에서도 그는 늘 다른 꿈을 품었다. 잠깐 손님이 없는 공백의 시간, 차 안 불빛을 켜고 원고지를 꺼내 들었다. 공책에 끼워둔 빛바랜 원고지를 펼쳐 펜을 눌러 글을 쓰다 보면 이내 뒷좌석에서 기침 소리가 나거나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허겁지겁 원고지를 접었다. 글쓰기는 늘 도망치듯 끝났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글자를 몇 줄이라도 남기는 것이 자신이 단순히 택시 기사로만 존재하지 않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그는 종이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님을 기다리며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고, 신호에 걸린 몇 초 동안에도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원고지에 한 줄 적는 데 걸리던 시간이 이제는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가능했다. 종이보다 빠르고, 종이보다 은밀했다. 메모장 속엔 길 위에서 흘러간 대화들이 곧장 기록됐고, 스쳐 지나간 표정들이 바로 한 문장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문했다.

“이게 글이 될까? 내가 감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운전대를 붙잡은 손으로 원고를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었다. 글쓰기는 늘 그를 불러냈다.

살림은 늘 팍팍했다. 아이들 학원비, 고장 난 차 수리비, 밀린 공과금.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말했다.

“야, 그 나이에 무슨 작가야. 그냥 택시나 잘 몰아.”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무너졌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잠든 새벽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켜면 자신은 더 이상 택시기사가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쓰는 사람’이었다.

몇 번의 공모전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하지만 가끔 짧은 심사평 한 줄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필력이 돋보입니다. 계속 써보시길 바랍니다.”

그 문장 한 줄이 다시 펜을 들게 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피곤보다도 어떤 불황보다도 더 강했다.

비 오는 여름날, 승객이 없어 한참을 정류장 앞에 차를 세워둔 적이 있었다. 빗방울이 와이퍼에 부딪히며 흩어질 때, 그는 원고지를 꺼냈다. 습기를 먹어 눅눅해진 종이 위에 글자를 적다 보니 문장이 자꾸 번졌다. 그때, 눈물이 종이에 떨어졌다. 택시 안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이별,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원고는 누군가의 손에 닿았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교정지를 받아 들었을 때 손끝이 떨렸다. 수십 번 고쳐 쓴 문장들이 활자로 인쇄돼 돌아온 것이다. 첫 책이 집 앞에 도착한 날, 그는 테이프를 뜯었다. 상자 속에서 매끈한 표지의 책을 꺼내 들었다.

표지에 선명히 찍힌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이건 진짜 내가 쓴 소설이야.”

종이 냄새, 잉크 냄새, 매끈한 표지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그는 포차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낡은 가죽 가방을 옆에 두고 술잔 앞에 앉았다. 얼굴에는 길 위의 피곤이 여전했지만 눈빛만큼은 달라져 있었다.

포차 안은 저녁 장사를 끝내고 한산해졌다. 형광등 불빛은 희미했고 주방에서는 마지막 남은 국물이 자작자작 끓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 둘이 소주를 기울이며 웃고 있었고, 벽걸이 TV에서는 오래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그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고수가 먼저 잔을 채우며 물었다.

“책, 언제부터 쓰신 거예요?”

그는 잔을 들고 한숨처럼 대답했다.

“처음 원고지를 산 게 스무 해 전이에요. 손님 없는 밤마다 몇 줄씩 적었죠. 나중엔 스마트폰으로 쓰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오늘 제 이름이 찍힌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아직도 꿈만 같아요.”

고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이 포차에서 본 손님들은 참 많습니다. 술에 지고, 일에 지고, 사람에 지쳐서 오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당신은 끝까지 자기 글을 지키셨네요. 그건 술 한 병 값으로 살 수 없는 겁니다.”

그는 순간 목이 메었다. 술잔이 흔들렸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만하자 나는 그냥 택시기사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이 저를 놔주질 않더군요.”

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부었다.

“술은 마시면 곧 사라지지만 글은 남습니다. 당신이 길 위에서 붙잡은 삶이 이제 책으로 남았으니 그건 이미 당신이 살아온 시간을 증명하는 겁니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오늘만큼은 제가 운전석이 아니라 제 자리에서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광등이 윙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옆 테이블 대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멀게만 들렸다. 고수가 마지막으로 잔을 채우며 말했다.

“스무 해를 버텨낸 당신 글은 이제 독자들을 취하게 할 겁니다. 술보다 더 오래, 더 진하게.”

두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그는 술잔을 높이 들며 중얼거렸다.

“제 이름이 책 표지에 진짜 제가 쓴 소설이에요.”

포차 안의 불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번져 보였다. 마치 그의 새로운 길을 비추는 등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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