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70세 마라톤 완주기

by 권성선

그는 올해로 일흔 살을 맞았다.

1950년대 후반, 전쟁의 그림자가 아직 골목에 남아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집안은 가난했고, 먹을 것을 두고 형제끼리 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를 끝내기도 전에 공장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기계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고, 밤에는 막노동판에서 지친 몸을 뉘었다.

“젊었을 땐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했지. 먹고살려면 그 수밖에 없었어.”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으면서 삶은 더 치열해졌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60이 넘었고, 공장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뒤에는 집 근처에서 작은 자재상을 운영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려 했다.

그러나 몸은 그 세월을 버티지 못했다. 65세가 되던 해, 건강검진에서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당 수치가 많이 높습니다. 당뇨 단계예요.”

그 순간 그는 멍해졌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 게 병이라니.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을 때 아내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당신, 검사 결과 어땠어?”

“… 당뇨래.”

짧은 대답이었지만 아내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날 밤 그는 오랫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 인생도 끝이구나.

걷기에서 달리기로

처음엔 산책부터였다. 병원에서 하루 30분만 걸어도 좋다고 했으니까. 집 근처 공원을 돌기 시작했지만 금세 숨이 차올랐고, 다리에 쥐가 났다. 친구들은 “나이 들어 뭘 그렇게 하냐”며 혀를 찼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걸어야지.”

조금씩 거리가 늘었다. 2km, 5km, 그리고 10km. 어느 날 공원에서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을 만났다.

“아저씨, 같이 뛰어보실래요?”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따라 걷다가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매일 새벽, 해가 뜨기 전 운동화 끈을 조여 매며 그는 다짐했다.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

하프에서 풀코스로

그의 목표는 ‘하프마라톤 완주’였다. 21km를 완주한 날, 그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해내다니…” 그러나 동호회 회원들은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이제 풀코스 갑시다. 42.195km!”

70세 생일을 앞두고 그는 결심했다.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일지도 모른다.

매일 20km를 달리고, 주말이면 언덕길을 오르며 몸을 단련했다. 발톱이 빠지고 무릎이 시큰거려도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어느 순간 새벽마다 운동화를 묶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싸주었다.

드디어 대회 당일, 그는 스타팅 라인에 섰다. 수천 명의 러너들 사이에서 그의 눈에는 오직 앞으로 뻗은 도로만 보였다.

처음 10km는 괜찮았다. 그러나 25km 지점부터 다리가 무거워졌다. 숨은 거칠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만해야 하나? 여기까지도 잘했다는 생각으로 멈출까?

그때 손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완주하면 제가 노래해 드릴게요!”

그 말이 등을 밀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 5km는 지옥 같았다. 다리는 돌처럼 굳고, 눈앞은 아득해졌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파이팅!” 외침이 그를 붙들었다. 결승선 테이프가 눈앞에 보일 때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42.195킬로… 숫자가 이렇게 의미 있을 줄 몰랐어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이 빙글 돌았지만, 가슴은 벅차올랐다.

완주 후,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 그는 홀로 발길을 돌려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불빛이 환한 고수포차가 눈에 띄었다.

낡은 비닐커튼을 젖히고 들어서자, 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뭘로 드릴까요?”

“소주 한 병만.”

그는 구석에 앉아 술잔을 비웠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환했다. 옆자리에 앉은 직장인 무리가 그의 젖은 운동화를 보고 물었다.

“어르신, 어디 다녀오셨어요? 마라톤이라도 하신 건가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오늘… 제 생애 첫 풀마라톤 완주했습니다.”

포차 안은 순간 고요해졌다. 놀라움이 섞인 시선들이 그에게 쏠렸다.

“70세에… 요? 대체 어떻게 그걸 해내셨습니까?”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십 번도 넘게 있었어요. 30킬로 지점에선 다리가 굳었고, 35킬로에선 눈앞이 흐려졌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손자의 얼굴이 떠올랐죠. 손자의 얼굴이 제 등을 밀었습니다.”

말끝이 떨리자 옆자리에 있던 직장인이 몰래 눈을 훔쳤다. 누군가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그는 웃으며 술잔을 다시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살고 싶어서 달린 겁니다. 당뇨라는 말 들었을 때 이제 끝났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결승선에 서 있더군요.”

포차 안은 더 이상 술집이 아니었다. 작은 강연장이자 인생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소주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내 나이에도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냥 한 발 더 내딛으세요. 살고 싶다면 말입니다.”

울컥 올라오는 감동 속에서도 그는 포차의 인간미를 잊지 않았다. 술잔을 툭 부딪치며 덧붙였다.

“자, 잔 비우고 다시 채웁시다. 완주든 인생이든 결국 같이 달려야 재미있는 거니까.”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맞부딪쳤다.

그 순간, 고수포차 안에는 땀내와 국물 냄새 사이로 묘한 울림이 번졌다. 그것은 한 인간이 70년을 버텨낸 힘, 그리고 여전히 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섞인 울림이었다.

포차 밖 늦가을 바람이 골목을 스쳤다. 오늘 하루 포차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도 작은 결승선 하나가 세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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