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임신
결혼 후 이직하면서 1순위로 고려한 것은 '육아휴직에 긍정적인 곳인가'였다.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아니면 원장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는지 면접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앞으로 아기 가질 생각 있겠네요?"
나는 그렇다고 했다.
어떤 답변이 나올지 침이 꼴깍 삼켜졌는데,
원장님은 "그럼~하늘이 주시면 낳아야지!" 했고, 면접말미에는 그 자리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원장님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 면접날 이야기했던 하늘이 주신 아기가 생겼으니 무사히 잘 낳으면 되는 것이었다.
원장님과 몇 달동안 여러 차례 상의하며, 휴직 시기를 정했다.
몸에 무리가 될 만한 일들은 동료 교사들의 배려를 받았고,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일했다.
생전 입지 않던 '엉덩이까지 오는 오버핏 티셔츠'에 '임부용 고무줄바지'가 출근복이 되었다.
배가 많이 나온 편은 아니었지만, 개월수가 늘어날수록 이전에 입던 옷들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출근하면 아이들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이 등, 하원할 때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 상태나 특이사항을 공유한다.
배가 불러오니 아무래도 티가 나는 건지 학부모의 시선이 내 배로 향하는 게 자주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민망할까 싶어서인지 누구 하나 임신여부를 직접 묻지는 않았다.
나는 속이는 듯 아닌 듯한 이 불편함이 싫어서 원장님과 상담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본인들은 애 안 낳았대?" 하며 한 발짝, 아니 서너 발짝 나아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누가 뭐라 했다던가?
그 화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다행이긴 했으나, 이해되지 않는 반응에 멋쩍게 "하하" 웃고 후퇴했다.
그냥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가족과 주말을 보내고 온 월요일은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힘든 날이다.
월요일 아침, 등원하면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칭얼대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달래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이를 내 품에 턱! 안겼다.
헉! 하고 놀란 나는 아이를 급히 내려놓고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왔다.
잠깐이었지만, 15kg 남짓되는 아이는 내가 임신한 후 처음 드는 무게였다.
엄마 앞에서 뒹굴지 않고 얌전히 나를 따라와 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하루는 둘째를 가진 어머님이 나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다.
행복한 표정으로 벅찬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그 순간, 나도 축하받고 싶은 마음에 입이 간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축하해 드리고 교실로 돌아오면서 '학부모들은 내가 임신한 줄 아는 걸까?' 하는 의문이 더욱 커졌다.
커다래진 의문을 묻어둔 채, 어느새 휴직이 2주밖에 남지않은 날이었다.
하원 시간에 졸업한 아이의 어머님을 만났다.
동생이 재원 중이라 가끔 마주치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아이의 기관생활, 또래관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반갑고 편안하게 지냈다.
어머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삭이듯 물었다.
임신 후 학부모에게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지난주에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못 봤는데 한 주 사이에 배가 많이 나왔다는 거다.
어머님의 축하인사를 받고 내년에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운 마음을 나눴다.
이제까지 기관의 입장을 고려해 오픈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더 이상은 안되겠다.
마음이 급해져서 원장님을 찾아갔다.
임신했냐고 묻는 학부모가 있는데, 언제 알릴 것인지 물었다.
원장님이 말하길,
"배가 나왔는데 그걸 모른단 말이야?"
알겠거니 할게 아니라 안내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안일한 태도였다.
이제 정말 휴직이 코앞이란 말이다.
그제야 마음이 급해졌는지 나의 임신을 공개적으로 공지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큰 파장을 불러왔다.
축하와 함께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어려 보인다는 칭찬을 담아서 결혼했는지 조차 몰랐다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아이가 새로운 교사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분은 늦은 안내에 불만을 가지고 항의했다.
수습은 원장의 몫이었다.
나의 몫은 아이들과 잘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지만, 이별이 갑작스럽지 않도록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눴다.
또, 이별이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편지와 선물을 준비했다.
멀리서 너희의 성장과 건강을 빌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어찌어찌 임신 8개월까지 근무하고 휴직에 들어갔다.
종종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임신은 무관심이었을까, 배려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살이 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생각을 GPT가 종식시켰다.
마음이 조금 상하는 것 같으니, '몰랐다'로 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