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SNS는 달라
출산하고 다음 날부터 아기를 병실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동식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가가 병실로 가는 동안 깰까 봐 성인이 걸을 수 있는 최대한 작은 걸음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마주 오는 다른 부부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아직 한참 약하고 귀한 아가들이었다.
잠든 아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어디가 누구를 닮았나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깨어나면 남편과 돌아가며 안아보았다.
둘 다 이렇게 작은 아기는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고 조심스러웠다.
다시 신생아실에 데려다 놓기 전에는 신생아실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할까 봐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어설픈 엄마 아빠가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던 중, 찍~하고 나온 대변을 잊을 수 없다.
으앗! 그 상황이 당황스럽고 웃겨서 깔깔거리며 기저귀를 급히 덮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물론이고, 아기와 함께 있는 것조차도 어색했지만,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셋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출산 한 날부터 둘째 날, 셋째 날...
아기의 소중한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과 영상으로 성실하게 담았다.
그리고 아기의 출산을 우리만큼이나 기뻐하는 양가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전달했다.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귀찮고 신경 쓸 것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출산한) 친구가 추천해 준 앱을 써보는 게 어떤지 물었다.
일일이 전할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초대하고 한 군데에 올려두면 모두 볼 수 있다고 했다.
부담스럽고 미심쩍기도 했지만,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어차피 매일 아기의 하루하루를 남길 것이고, 이렇게 예쁜데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도 있었다.
또, 나는 평소에도 일기를 매일 쓰고 있으니까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앱에 가족들을 초대하고 지난 며칠치의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이 일이 내 완벽주의 성향을 건드려 의무감이 되고, 일로 다가올 줄은.
"탄생일!"이라고 한 줄 남기던 게시물은 점점 진화해서 사진 설명은 기본, 아가의 새로운 행동, 행동의 의미, 새로 제공한 놀잇감의 효과, 발달상황, 아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마치 어린이집 키즈노트를 방불케 했다.
가족들이 아기는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물으면 사실은 나도 잘 모르는 아기 마음을 읽어가며 답글을 달았다.
터미타임이 뭔지 물으면 검색해서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찾고,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을 만한 변명 따위를 덧붙여야 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보고 계시니 이것저것 신경이 많이 쓰였다.
가족들에게 편하게 공유하려고 시작한 기록은 어느새 SNS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남편에게 맡기는 것은 마음에 들 것 같지 않아서 부탁하지 못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육아일기를 쓰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난 지 40일이 되었다.
그 사이 병원을 퇴원하고,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으로 오던 산후도우미도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지만, 은근한 스트레스를 주는 육아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앱에서 40일의 무료이용 기간이 끝났다며 유료로 전환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만 둘 핑곗거리가 생겨서 쾌재를 불렀다.
남편은 내가 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가 이용료 때문인 줄 알고 결제하라고 했지만, 손사래 쳤다.
일기와 SNS는 달랐고, SNS는 일기 쓰듯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편하게, 쓰고 싶을 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내 일기장에 육아일기를 쓰기로 했다.
엄마 마음이 편안해야 아기도 행복할 것은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