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아가야
나는 출산 전까지 수술경험이 없었다.
그러니까 제왕절개가 내 생의 첫 수술이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두고 계속 고민했는데, 30주 차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아기 배가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산하다가 몸통이 걸리는 것이 아기 머리가 큰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제왕절개를 권했다.
사실 둘 다 겁이 나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것에 후련한 마음도 있었다.
수술시각은 10시였다.
당일 7시, 이제는 볼 수 없을 만삭배를 사진으로 남기고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수속을 밟고 수액을 맞은 후, 간호사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인적사항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여럿이 들것에 붙어서 나를 수술대로 옮겼다.
수술실이 춥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윗니와 아랫니가 끊임없이 부딪힐 정도로 덜덜 떨렸다.
마취사에게 이 떨림이 긴장감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물었다.
그 물음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자,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무서웠다.
마취사는 수술실이 원래 춥다고 답한 뒤, 자신의 마취경력을 소개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정확히 말하면 안심시키려 했다.
이어서 마취경험에 대해 물었다.
"수술은 처음이에요"
"그렇군요. 15년 동안 마취 안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걱정 마세요."
곧 옆으로 눕혀 척추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손이 저릿저릿하다고 하니,
"마취보다 몸이 배에 눌리는 힘이 더 세서 그래요. 그럼 평소에도 똑바로 누워있기 힘들었겠네요"하고 임신기간 동안의 내 고충을 단번에 아셨다.
임신중기부터 누워있으면 머리로 피가 쏠려서 바로 누울 수 없었다.
이제 바로 누워 잘 수 있다!
출산일을 기다린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곧 39주간 우리 아기를 살펴주신 담당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 얼굴과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의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인한 엄마가 되기 위한 출발선 앞에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취가 잘되었는지 확인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몸이 흔들릴 거라더니 감각이 없어서 침대가 흔들리는지 내가 흔들리는지 구분되지 않았다.
천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아래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듯했다.
역시 제왕절개라 수술 중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다 아기가 나오는 건가' 하던 그때, 푸른 천에 감싸인 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뱃속에 있던 아가가 너니? 너였구나. 진짜 태어났구나.'
어안이 벙벙한 나에게 간호사가 아기를 들이밀었다.
"아기랑 인사하세요."
"어.. 어.."
입이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 않았고 낯선 아기를 쳐다만 보았다.
어색한 와중에 주변 사람들도 신경 쓰여서 태명 부르기도 민망했다.
"아기가 추워서 어서 가야 해요. 어서 인사하세요!" 하는 재촉을 받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적절한 말을 골랐다.
" 바, 반가워!"
어설픈 엄마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 아기는 간호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예정대로 아기얼굴을 보고 수면마취를 했고,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졌다.
"산모님! 산모님! 일어나세요!"
정면에 보이는 대문짝만 한 시계를 보니 아기 출생 시로부터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마취사가 말했다.
"산모님이 몸부림을 심하게 쳐서 마취상태가 더 위험할 것 같아서 깨웠어요!"
내가 드물게 마취 안 드는 사람인 건가 싶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알 턱이 없었다.
결국 의도치 않게 맨 정신으로 후처치까지 받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회복실에서 대기하면서 출산한 산모들을 순차적으로 케어하는 분주한 회복실 사정을 생생히 체험했다.
회복실을 거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텐데 당시에는 '마취도 안 됐는데 빨리 병실로 보내주지'하는 생각만 들었다.
태어난 당일 저녁에는 남편만 창문너머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걸 '창문면회'라고 불렀다.
남편이 창문면회 가서 찍은 아기사진을 보냈다.
아직 눈도 못 뜬 아기는 우리 눈에 말할 것 없이 예뻤고, (우리 눈에)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이었다.
수술 후, 나는 반나절동안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
몸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꼼짝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예뻐 보이고 보고 싶은 것이 대단한 모성이라 느껴졌다.
거기다 전에 없던 낯선 소유욕까지 생겨서 스스로도 놀랐다.
우리 아기도 아니고, 나의 아기라고 느껴졌다.
나에게서 태어난 아기, 나의 일부였다.
본능적인 보호본능과 함께, '엄마'라는 정체성이 문을 열고 내 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이어서 팔불출 같은 남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직 눈도 못 떴는데 예쁘게 생겼어. 그리고 앞으로도 못생겨질 것 같지가 않아."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기가 실제로 좀 못생겨진들 못나 보일리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