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로 극복되지 않는 순간들
유치원교사로 5년, 어린이집 교사로 6년을 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기관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교사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특히, 연령이 어릴수록 교사는 애정을 가지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고 오래 기다려주어야 한다.
'감정을 다스리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은 현장에 있는 매 순간 노력해 온 일이었다.
단련한 기간이 있어서 '인내'라면 자신 있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공부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지 않는 동기들이 꽤 많다는 걸 건너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직에 있는 대학 친구와 교육현장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귀했다.
우리가 종종 만나서 하는 이야기 중에는 아이의 행동을 '발달적 측면'에서 볼 줄 모르는 교사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보다는 내 아이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나도 몰랐던, 내가 예민해지는 부분은 아이와의 사소한 일상에서 나타났다.
출산하고 100일이 지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때 '잔디머리'라고 부르는데 볼품없이 관리되지 않은 내 모습이 초라했다.
다시 자라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아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엄마의 머리카락은 신기한 놀잇감이었고, 그나마 붙어있던 머리카락들이 아기를 안을 때마다 그 작은 손에 자주 뽑혀 나갔다.
"아..! 머리카락 좀.."
따끔한 느낌과 불쾌함이 함께 밀려왔다.
어린아이를 돌볼 때 양육자와 아이 모두를 위해 악세사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악세사리는 거슬리거나 긁힐 위험도 있고, 어린아이에게 반짝거리고 달랑거리는 것들은 모두 만져보고 당기고 싶은 신기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경은 내가 생각하는 위험한 악세사리 카테고리 안에 있지 않은 품목이었다.
나는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지만, 2세 이상의 아이들을 담임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안경을 궁금해하거나, 잡아당기려 한 적은 없었는데...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작고 호기심 많은 아이는 엄마 얼굴에 걸쳐있는 큰 동그라미가 궁금했다.
움직일 때도 엄마 안경까지 신경 쓰고 움직일 리 없었다.
안경이 휙 돌아가거나 눈이 찔리는 그 순간에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나는 머리카락과 눈을 지키기 위해 육아 중에는 머리끈을 꼭 착용하게 되었고, 안경은 쓰지 않게 되었다.
이 외에도 일어설 때 엄마 허벅지 꼬집으면서 일어나거나, 이유식을 푸! 푸! 뿜어내서 얼굴과 금방 갈아입은 옷이 엉망이 될 때, 물통과 숟가락을 반복적으로 집어던질 때도 내 안의 불덩이가 튀어나오려 한다.
아이가 나를 화나게 하는 행동들은 이 시기 아이들이 탐색하며 하는 행동들이고, 유난스럽거나 과한 것도 아니고, 엄마를 아프게 하려고 의도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함께 놀며 행복해하다가도, 아이의 이런 행동에 얼굴을 찌푸리고 감정이 상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전공자라는 자부심과 열정은 '알면서 왜 이래'하는 자책으로 이어져 나는 육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아이는 왜 하지 말라는 행동을 반복할까'
'아이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교사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되뇌어 알고 있었다.
'아이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고작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모성애로 극복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들은 아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다.
나에게는 뒤에서 괴로워하는 나의 감정을 토닥여 줄 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잘하고 있어."
"그럴 수 있어."
"조금은 그래도 돼." 라고 말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