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과몰입 부부

내가 없는 부모의 세계

by 매일의 푸

아이가 뒤집기 시작할 즈음, 거실바닥에 시공 매트를 깔았다.

아이가 기어 다닐 즈음에는 TV장과 식탁을 팔았다.

넓지 않은 집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은 처분했다.

사실 우리에게 불필요하다기보다, 아기의 동선과 안전에 거슬리는 물건들이라고 해야겠다.

안방에는 우리의 퀸사이즈 침대만큼 공간을 차지하는 범퍼침대가 들어왔고, TV장과 식탁이 빠진 공간에는 크고 작은 장난감들이 자리 잡았다.

이미 집 자체가 엄마아빠집이 아닌데, 거기에 베이비룸이란 것까지 더해져서 아기집이 아기집을 낳은 격이었다.


아기 물건을 살 때는 우리 것을 살 때보다 훨씬 많은 공을 들였다.

비교를 반복하며 고르는 와중에도 살 것들은 계속 늘어서 진이 빠졌다.

아기용품들은 또 어찌나 비싼지...


출산 후 체형이 변해서 새 옷이 필요했지만, 내 옷 고르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내 것은 필수가 아니라 여겨지니, 부복을 포함한 헌 옷으로만 계절을 지나 보내길 여러 계절이었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아빠역할에 몰입해 있었다.

자신의 생일선물로 20만 원 가까이하는 아기 플레이짐을 골랐다.

또, 쉬는 날이면 육아종합지원센터서 지원하는 장난감을 오픈런해서 대여 왔다.

아이가 가지고 논 장난감은 육퇴 후에 소독티슈로 매일 닦다.

남편은 책도 한 장 한 장 닦아서 말렸다.

아직 두껍고 장수가 많지 않은 보드북을 봐서 다행이었다.




분유만 먹던 아이는 어느새 6개월 차가 되 이유식을 먹게 되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만들어 먹일까 사 먹일까부터 시작해 도구와 구매처 등 많은 것들이 고민느라 잠을 설쳤다.

아기가 아직 어리니까 재료는 최대한 국내산, 유기농을 먹이려 노력했다.

우리가 먹는 계란은 신경 쓰지 않고 난각번호 4를 사 먹으면서 아기 계란은 굳이 난각번호 1을 찾아 먹였다.

엄마아빠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고, 아기는 안 괜찮았다.


루는 오트밀포리지를 먹여보겠다고 유기농 생블루베리를 왔다.

일반 블루베리에 비해 크기가 커서 가능했지만, 아이가 먹다가 목에 걸릴까 싶어 가위로 6 등분까지 자르 있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두 통을 다 자르고 보니 개구리알 같은 비주얼의 블루베리 조각이 꽤나 많았다.

'자식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 정도로 애쓸 수 있을까?'

고작 블루베리를 자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일보다 긴장의 끈을 풀고 육아할 수 있는 평화로운 주말 아침, 남편이 물었다.

"배고프지?"

"아기 아직 밥 먹을 때 안 됐어."

"아니, 여보말이야."

"아.. 나는 배고파."

나조차 잊은 내 공복상태를 남편이 걱정해 주었다.


우리는 늦은 아점으로 배를 채우고 장을 보러 갔다.

피로회복제 코너를 지나 요즘 피곤해 보이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활력원샷 원기원샷 저런 거 살까?"

"아직 못 먹지."

"아니, 아기 말고 여보말이야."

"아..."

내 머릿속에 '나' 존재를 지운 것이 분명한 남편의 반응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부모가 되면서 전에 없이 희생하는 일이 많아졌다.

힘이 부치면서도 희생할 수 있어 다행이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웃음 한 번에, 두 팔 벌려 안기는 아이 모습에,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나보다 귀한 존재가 생겨서 '나'를 잠시 삭제한 우리에게 가 고픈지, 회복제가 필요하진 않은지 물어봐주는 서로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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