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파도 되나요?

엄마, 아프지 마

by 매일의 푸

출근을 하지 않고 아이 중심으로 생활하다 보니 점심은 대충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보통 늦은 아점을 먹고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을 먹다.

남편 퇴근시은 나의 육퇴시간 비슷했다.


그날은 육퇴까지 기다리기에 너무 허기져서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었다.

전 날, 남편과 나는 회사일과 육아에 지친 기력을 회복하고자 추어탕을 주문했고,

냉장고에는 추어탕튀김에 섞여있던 고구마튀김이 남아 있었다.

아기 간식과 함께 고구마튀김을 담아왔다.

아이입에 간식을 잘라 넣어주고 재빨리 고구마를 콕! 찍어 먹었다.

아이의 간식시간은 내가 먹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미끼 같은 것이었다.

내가 먹는 속도가 아이보다 늦어선 안 됐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즈음, 슬슬 몸에 이상징후가 느껴졌다.

미열이 나고, 기운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고구마 맛탕을 먹고 된통 체한 일이 떠올랐다.

아까 먹은 고구마가 탈이 난 것 같았다.

'아기 봐야 하는데.. 아프면 안 되는데...'


또, 내일은 친한 친구들에게 처음 아기를 보여주기로 한 날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간 맞추기는 더 힘들어졌 때문에 년 만에 잡힌 이 약속을 깨야하는지 고민됐다.

괜찮아지겠지... 내일 아침까지 지켜보기로 하고 친구들에게 내 상태가 어떤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새 배가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끙끙거리다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구토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불쾌한 고통이었다.


다음 날, 쉬움보다 내 아픔이 더 커서 약속을 파투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근무를 급히 재택근무로 돌렸고, 이를 맡기로 했다.

감사게도 나는 회복에만 집중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깔끔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병원문은 열려 있었지만 진료 시간까지 15분 남아서 기다려야 했다.

'아... 너무 힘든데...'

상체를 숙여 대기소파에 반 엎린 상태로 있었다.

옆에 대기 중인 환자가 있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드디어 명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내 증상을 고 장염이라고 했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다 낫는다며 처방 내린 후, 수액을 맞으라고 권했다.

오랜 시간 걸려 수액을 맞고, 온음료와 죽을 사서 집 앞에 다다랐다.

집까지의 짧은 리가 한참 멀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쇠한 기력과 울렁임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 직전이었다.

한계였다.

사 온 것들을 던지듯 내려놓고 화장실로 뛰쳐 들어갔다.

Safe!

다행이다.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아직 아플 양이 꽤 남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 날은 남편이 출근을 해야 했다.

하루 동안 육아에서 벗어나 있었더니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 로 육아는 무리였다.

출산하고 늘 아픈 곳은 등허리나 손목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병에 걸리고 보니, 엄마는 아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대로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아파야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엄마가 뭔지...




남편에게 내 아이는 조부모님 손에 맡기지 않겠다, 힘들어도 육아를 부탁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었다.

육아에 관한 입장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피하고 싶었고, 양육자가 여럿일 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혼란을 줄이고 일관된 육아를 하고 싶었다.

또,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고 있는 엄마에게 의지하거나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가장 먼저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된 후에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걸려 나에게 와주었다.

손에는 내 연락을 받고 담근 김치가 들려 있었다.

이래서 엄마밖에 없다고 하나보다.




4일을 호되게 앓고 몸이 회복되어 여느 때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병원에 왔어."

"병원은 왜? 어디 아파?"

"눈이 뿌옇게 보여서 수술받으러. 뭐 제거하는 김에 백내장 수술도 받기로 했어."

"뭐? 왜 얘기 안 했어? 누구랑 있어?"

"혼자 왔어. 너 아팠잖아"

"그래도 왜 말을 안 했어.. 왜 혼자 갔어.. 아빠는!"

눈이 불편한 것도 숨기고 아픈 딸을 간호하러 온 엄마를 떠올리니 마음이 쓰렸다.

나는 왜 하필 이때 아파서 엄마는 딸한테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까

말했어도 같이 가주지 못했을 거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서 나이 든 몸의 이상신호를 치료하러 다니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엄마에게 소리 하고 나면 어김없이 내 마음이 더 아프고 힘들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꾹 참았다.


우리 엄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을까

언제 아픈 딸을 보살펴야 할지 모르니, 엄마인 나는 아프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어느새 딸이 훌쩍 자라서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라 마음 놓고 아플 수가 없다.


엄마,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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