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은 그만
아이와 함께 있으면 이례적으로 모르는 이들의 '조건 없이 따뜻한 시선'을 많이 받는다.
그만큼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무방비상태가 된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조차도 아이에 관한 스몰토크에는 표정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남편과 나는 실내수영장에서 아이 물놀이를 마쳤다. 밥때가 된 아이의 이유식을 먹이고, 우리 점심식사 메뉴로는 편백찜을 골랐다.
식사 전, 낯가림이 한창인 아이의 유모차 커버를 내려주었고, 아이는 칭얼거리다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곧 잠들 모양이었다.
편백집 사장님은
"엄마 아빠만 고기 먹으니까 고기 달라고 하네." 하며
씩씩한 걸음으로 우리 테이블을 지나쳤다.
우리는 웃어넘기고 식사에 열중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타이밍 잡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언제 손길을 뻗어야 할지 몰라 초조했지만, 그 와중에도 여유를 느끼며 빠르게 수저를 놀리고 있었다.
그때, 파워워킹하던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유모차 커버 가려져 보이지 않는 아이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도 고기 주세요 해."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사장님의 고개는 유모차 안으로 들어가다시피 한 뒤였다.
"어, 낯을 가려서...!"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아이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사장님은 당황한 듯 자리를 떴고, 우리의 평화롭던 식사시간은 강제로 끝이 났다.
남편은 식사를 중단하고 유모차를 끌고 식당밖으로 나갔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남편은 기분이 상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했지만, 나는 여유로운 식사시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좀 더 머물렀지만, 역시 기분을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식당을 나가는 길에는 '사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다.
하지만 영수증 용지가 다 떨어졌다며 오랜 시간 계산대 앞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앞전에 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사과의 말을 건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음에 허탈함을 느꼈다.
식사 전에 놀던 실내놀이터에서 기저귀만 갈고 귀가하려 했다.
그런데 잠이 홀라당 깨버린 아이가 좀 더 놀려는 기색을 보였고, 우리는 식당에서 상한 기분 좀 전환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도 기운은 덜해 보였지만, 여기저기 관심을 보이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귀가 전, 빵빵해진 기저귀를 갈기로 했다.
기저귀 갈이대는 세면대 옆 오픈된 공간에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잡고, 나는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이는 중이었다.
손을 씻기 위해 옆 세면대를 이용하러 온 애기아빠가 우리 아이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내 몸을 돌려 아이를 가렸다.
기저귀를 올리려고 아이를 일으켜 세웠을 때는 남편이 몸으로 아이를 가렸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기저귀 가는 중에 뚫어져라 계속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부모가 불편함을 온몸으로 티를 내는데도 무뎌서 알아채지 못한 건지...
'다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아기가 예뻐서 쳐다보았을 것이다'라고 계속 되뇌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수습하느라 도돌이표 같은 대화를 반복했다.
부모가 되니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는구나 진이 빠졌다.
사과가 어려운 일부 기성세대에 씁쓸함을 느꼈고,
나는 수영장에서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되짚어 보았다.
우리의 민감도가 높은 걸까 자체 검열도 해보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한 경험이 전부라고 치부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부모로서는 1년남짓 짧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이 날 배운 '부모로서 취해야 할 행동거지'는 잊지 않고 기억해 두기로 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했을까 복기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예뻐하면서 웃으며 다가오면 부모입장에서 모나게 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로 무례하게 군다면 '아이가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는 즉시 대응하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은 피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