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말아요

내 안에 엄마 있지, 엄마 안에 나 있냐

by 매일의 푸

맘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남편이 제 육아휴직을 쓰면 좋을까요?

언제가 가장 힘든가요?'

댓글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아무래도 신생아 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었어요'

'6개월 이후 뒤집기 시작하고 쓰세요'

'돌 지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체력소모가 커서 남편이 필요해요.'

그리고 하단에는

'시기마다 다 다른 힘듦이 있어요.'


육아에 뛰어들고보니 카페에서 본 글 그대로였다.

시기마다 다른 힘듦을, 미션 깨듯 하나씩 클리어해 나갔다.




10개월 차에는 우울감을 자주 느꼈다.

삶 전반에 회의감과 자기 연민을 빙빙 둘렀다.


손 뒤로 얼굴을 숨며 아이와 까꿍놀이를 하다가 무심코 두 손이 턱으로 향했다.
사진 찍을 때 내가 자주 했던 꽃받침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 포즈가 어색하고, 그립고, 서글펐다.
예전에는 내가 꽃이었다.
내 인생 중심에 내가 있었고 스스로 예쁘고 빛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덧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못나진 내 사진을 찍지 않은지 오래였다.




임신 기간부터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키우고 싶다'

'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다'

공통된 의견을 나누며 알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는가'라는 것을.


아이의 첫 미용실 방문일이었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 낯선 경험에 아이가 울 것이 뻔히 보였다.

정신이 없어서 스타일리스트에게 원하는 스타일을 전달하지 못할까 봐 휴대폰에 적었다.


[머리숱은 가볍게 쳤으면 좋겠고.

전체적인 길이는 짧아지지 않게.

핀을 꼽거나 머리를 묶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미용실에 가면 보통 하던 스타일을 유지했고, 넉살이 좀 생기고 나서는 미용실에서 추천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기 미용실 가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세세하게 떠올랐다.

순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30대까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좀 주체적으로 살 걸.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살피고 이것저것 해 볼 걸.

출산 후 나는 점점 작아지는 '나'에게 애틋한 음이 생겼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나는 다시 홀로 육아장에 남겨졌다.

마음을 다잡았고, 새로운 생활패턴에 적응했지만,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는지 몸과 마음에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지금은 지나간 감정이지만, 메모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남편 육아휴직 때 왜 더 과감히 떠나 보지 않았을까.
아니 외출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분명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괜히 그러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나에게 자유를 줘볼걸.
터질 것 같은 두통, 4주간 홀로 쉼 없이 달려온 육아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글 속의 나는 많이 지쳐 보였다.




남편과 교대로 식사하던 어느 날,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입맛이 자취를 감췄다.

알고 보니 본능적인 긴장, 심리적 압박감, 무의식적 스트레스로 인한 근거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엄마들이 '엄마'소리에 힘들어할 리 없을 텐데...

아마 아직 내공이 부족한 초보 엄마서 그런 것 같다.


직장에서 새로운 역할이 하나 더 생긴다고 나의 뿌리가 변하지 않는다.

나에게 엄마라는 직책이 하나 더 생겼다.

물론 이 직책은 평생 무를 수 없고, 무엇보다 소중하고 커다란 역할이다.

하지만 흐려지기 쉬운 '나'를 잃지 않으면서 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나' 없이 엄마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