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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Aug 26. 2024

손이 빠르면 밥은 먹고 살더라

낭인의 사회적응기록

 어느 일본 유튜브 영상에서 就活浪人(취업활동 낭인, 취업 재수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봤다. 그래서 낭인(浪人)이라는 한자 단어를 찾아봤더니 이게 딱 내 이야기지 않나.     


낭인(浪人):
일정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허랑하게 돌아다니거나 세월을 보내는 사람, 떠돌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과도한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살았더니 병이 되어 건강을 잃고 그리 되었다. 게다가 헤어까지 히피펌이라서 겉모습도 낭인에 딱이랄까. 15만원의 볼륨매직보다 히피펌이 멋내기엔 훨씬 싸고 오래 유지되어 한 거지만. 나름 실속파?

3만 5천원 히피펌 강추

(Tip. 히피펌은 할머니들 다니시는 동네 미용실에서 하면  저렴하고 보글보글한 스타일이 오래간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집에만 있었던 것보다는 이리저리 떠돌더라도 조금이라도 일해보고 돈도 벌어본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인생의 못난 행적이라도 스스로 품어야지 어쩌겠나.



   

 학생 시절에는 옛날 피처폰 제조 알바, 모 가수의 콘서트 영어/일본어 현장 통역 알바, 위장 손님으로 매장을 방문해 서비스 평가하는 알바, 전시회 알바와 인턴 기자를 해봤다. 물론 길어봤자 두 달씩이지만.


 그리고 졸업 후에는 대형마트 판촉 알바, 전시회 알바, 빵집 알바, 맥주집 서빙조리 알바, 학원 영어강사, 무역사무원, 카페 바리스타, 소형마트 캐셔, 전자회사 제조 부업과 정규직까지 거쳤으니 정말 낭인은 낭인이다.







 

 이번엔 전자회사 생산직의 정규직 사원이었는데 무조건 손이 빨라야 살아남는 곳이었다. 매의 눈으로 불량도 잡아내야 하니 단순직이라도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바빠도 그나마 업무가 간단한 게 마음이 편해서 지금껏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다. 개성은 있어도 일 처리에 지장을 줄만큼 이상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도 럭키였다.



    

 애초에 손이 느리거나 딴짓하는 사람은 걸러지는 시스템이다. 이런 건 회사라는 영리단체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제조에선 빠르고 정확한 처리가 최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쿠X 물류 하다 온 사람은 이 회사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는데, 그런 곳에서 나도 어떻게든 버텨내어 회사 밥을 1년 N개월 먹었다.




 제품 제조와 검사, 두 가지 업무를 맡고 필요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포지션을 취했다. 하나만 계속하면 이상하게 몸이 아픈 내가 반장님한테 혹시 가능하면 일을 종종 바꿔달라고 부탁드렸던 사항이었다. 대부분 한자리에 오래 있기를 원하는 편이라 흔쾌히 들어주셔서 감사했다. 그런 이유로 어지간한 업무는 다 해 봤다.




 그래도 손이 빠르니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지냈다.  체력이 안 따라주고 여기저기 아파서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 버틸 만큼 벌어갖고 나왔으니 이제는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또 덕분에 사회로 복귀하여 자신감을 얻고 이젠 표정도 밝아졌다는 말을 들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전회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낭인처럼 살아온 나도 밥은 먹고 살 만큼 꾸준한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다음 목표는 ‘회사 좀 더 오래 다니기’인데 사는 데 정답 있나. 내 목구멍 하나만 책임지면 이렇게 살아도 인생, 저렇게 살아도 인생이지. 또 가볍게 나아가자.




여담) 실은 청년도약계좌와 개인연금으로 X줄 타는데도 애써 쿨한 척..

청년도약계좌 적금

예금으로 적금 돌려막기 해야 하나 합니다

카드 돌려막기만 안 하면 다행이죠 허허(일해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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