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작가 Mar 28. 2022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뭐지, 이 낯선 감정은?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예뻐는 했더랬다. 지나가면서 ‘아 귀엽다’ 정도. 

결혼을 하기 전에도 아이를 정말 예뻐하던 나였고 조카가 먹다 뱉은 것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입에 넣었던 나는 모태 엄마 같았다. 그런데 내 아이 둘을 키우고 넉다운이 돼서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어렸던 그 시절 친구와 산책을 하다 엄마와 엄마 친구들을 만났다. 초췌한 우리를 보면서 "아이 키우느라 힘들지. 아유~ 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하셨다. 어른들이 지나가고 나서 친구가 말했다. "난 어머니들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어." 엄마들의 그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힘들 때구나.

    

그런 내게 동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주변 지인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걸 보면서 예쁘긴 했지만 고생스러워 보였다. 더군다나 나는 완전한 강아지파. 고양이는 남편 친구 집에 갔다가 몇 번 할큄을 당하고 그들의 날렵한 눈매에 완전히 겁을 먹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누나인 형님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키울까 고양이를 키울까 하던 차에 지인의 부부고양이에게서 새끼고양이가 태어났다고 하더니 결국 키우게 되었다. 이 아이는 내가 알던 고양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부드러운 성격에 늘 사람을 따라다니고 심지어 우리집에 와서도 편안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만난다던 그 개냥이.

아이들은 늘 피노를 보러 가자고 했다. 

예쁜 피노. 피노는 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주었다.      

우리 딸의 소원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었고, 나는 기약도 없이 "언젠가 주택에 살면 키울거야." 라고 말했다. 물론 주택에 살 계획은 아직 없다. 입버릇처럼 아이는 "우리 나중에 주택에 살면 강아지 키울 거예요!" 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어느 날 형님이 피노의 엄마가 또 임신을 했다고 전했다. 너무 예쁘겠다고 했더니 형님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생각 있어?” 

“저는 아이나 동물 중에 하나만 키울 거예요. 둘다는 절대 안 돼요.”

“그래, 그럴 줄 알았는데 애가 얘기하길래..”     


그로부터 한참의 날들이 지난 후, 문득 고양이가 궁금했다. 이제 태어날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깨달은 낯선 감정.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당황스러웠다. 

이제 애들이 좀 커서 살 만 해졌는데 고양이 육아라니. 변탠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마음이 커져갔다. 그러면서도 아기들이 태어났을까 하루하루 궁금했다. 나 혼자 품은 마음이었지만.    


2월 24일 아침, 형님한테 연락을 해봤다.

“아가들 아직 안 태어났어요?”

“그러게 아직 연락이 없네”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머! 오늘 새벽에 아가들이 태어났대!!!”

사진을 줄줄이 보내주셨다.     

내가 물어본 김에 연락해봤더니 아가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미 고양이는 다섯 마리의 아가에게 젖을 먹이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들을 팔로 감싸안은 채.     


어머나.. 너무 예쁘다. 아가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전해져 뭉클했다. 

그래, 나도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랬지. 작고 연약한 아기가 따뜻하고 몽글몽글하고 그랬지. 나도 이렇게 아기를 꼬옥 안고 있었지. 젖 먹이면서 아파서 울기도 하고, 작은 아기를 안고 업으면서 한없이 마음이 행복했었지.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컸지만 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 그저 건강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잘 먹고 잘 싸면 감사했던 그 시간.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내 마음 속에 피어난 작은 욕심들. 작은 욕심이 모여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았던 마음들.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생각나면서 마음이 보드라워졌다.     




그날은 슬프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세상. 어이없는 독재자의 욕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전쟁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난다. 부모와 헤어지고 울면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던 아이의 모습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으리라. 도대체 생명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몽글몽글한 아기 고양이들과 꼬옥 감싸안은 어미의 모습은 내 마음 속 깊이 각인되었다. 굳어진 내 마음 속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던 그날. 2월 24일은 그렇게 나에게 기억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