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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Apr 01. 2022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수만가지 이유

1. 집을 잘 못 치운다.

2. 털이 많이 날린다.

3. 나와 아들의 비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4. 손이 많이 간다.

5. 아이들 케어로도 벅찬데 동물까지 키우는 건 어렵다.

6. 동물을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긴 시간이다.

7. 여행을 가기 어렵다.

8. 고양이는 수직운동을 해서 위쪽까지 다 치워야 한다.

9. 집이 1층이라 밖으로 튀어나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10. 학원 라이드를 하러 나갈 때마다 불규칙적으로 고양이를 두고 다녀야 한다.

11. 식물을 키우기 어렵다. 꽃도 꽂아놓기 어렵다. 난 꽃을 좋아하는데.

12. 재택근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13. 이제야 아이들 잠자리를 분리했는데 고양이랑 같이 자느라 잠을 설칠 수 있다.

14.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15. 베란다 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베란다에 짐이 많다.

16. 온 집에 짐이 많다.

17. 스코티쉬폴드는 유전병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정리를 못 하는 것과 연관된 것 같긴 하지만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사뭇 현실적으로 바뀐 꿈 덕분에 유튜브에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이 아닌, 고양이를 키울 때 필요한 주의사항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아이가 얼마전에 사둔 고양이 탐구생활 책도 읽었다. 형님이 고양이를 키울 때 필요한 내용을 전해줬는데 엄청나게 길었다. 보고 듣고 읽을수록 부담감이 커졌다.   

  

예쁜 장난감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저 예쁘고 귀엽다고 데리고 왔다가 감당이 안 되면 어쩔건가. 형님네 고양이를 보면 너무 착하고 순해서 충분히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15년 정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처음의 설레는 느낌으로만 대할 수는 없었다. 내일 일도 모르겠는데 10년 후의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자꾸 걱정을 하니까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그냥 안 키워도 돼. 꼭 키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으면 괜찮아. 나중에 내가 혼자 살 때 키울게.”     


우리 아이들은 걱정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더니 부담이 되었나보다. 애들이 뭘 먹고 식탁 위에 그대로 두고, 과자 까먹고 그대로 둘 때마다 잔소리를 해서 더욱 체감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둘째는 동물을 어려서부터 많이 좋아했지만 큰 아이는 동물보단 식물파였다. 어린 시절 자연관찰 책에서도 옥수수책, 사과, 배 책 등 식물 책만 들여다 봤던 아이다.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우리가 키우려는 고양이는 스코티쉬폴드. 귀엽고 성격이 부드러워 사람들이 좋아하는 종이지만 유전병이 있다. 엄마 고양이는 폴드고 아빠는 정확히 어떤 종인지 잘 모르겠다. 관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엄마 아빠 고양이 모두 건강하고, 형님네 고양이와 지인들이 데려간 고양이 모두 건강했다. 실제로 많이 느끼진 못 했지만 막상 이후에 유전병이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찾다보니 스코티쉬폴드는 너무 귀엽지만 키워서도, 교배해서 분양해서도 안 되는 종이라는 강력한 의견도 많았다. 내가 모르던 세상이 엄청나구나 싶었다. 이번에 아기들을 보내고 나면 부모 고양이는 중성화를 시키려고 한다고 들었다. 내 고양이가 아니라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키우고 싶은 이유도 많지만 키우면 안 되는 이유는 훨씬 더 많았다.      


어느 날 저녁, 친구가 찾아왔다. 뭘 전해주러 와서 온 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고양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친구가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 그 집은 아이가 없어서 어른 둘이 케어를 하고 있지만, 이 집은 아이들 케어하고 일도 하면서 못 키워. 내가 이건 진짜 말려야겠다 싶었어.”     


한참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나를 말리러 왔구나. 날 진짜 걱정하고 있구나.’

따뜻한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반대했다. 우리집 상태를 잘 알아서겠지.


나는 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을까.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친한 친구 중에 상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내게 정리컨설턴트를 불러서 정리를 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상담을 권유해준 친구. 그녀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고마운 친구다.      


“내가 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지 생각해 봤는데, 마음이 좀 허한 것 같아. 공허한 마음이랄까. 엄마가 계신데 엄마가 자꾸 희미해져. 슬프다.”

“그러게. 슬프다.”

“오늘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마음 깊은 곳이 건드려진 것 같아. 급 우울해졌어.”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를 친구는 잘 들어주었다. 전화를 끊을 즈음, 친구가 덧붙였다.     


“현정아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너 예전엔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 아니야. 너무 가라앉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너가 이렇게 뭔가 하려는 욕구가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고양이를 키우든 키우지 않든 너의 새로운 마음을 응원해!”     




하루동안 기분이 널뛰는 날이었지만, 그날 밤 나는 기분좋게 잠들 수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위로가 될지 부담이 되어 폭발할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를 아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마음인지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만 너무 가라앉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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