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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Mar 31. 2022

일단 정리를 해보자.

고양이를 키우고 안 키우고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집은 정리가 필요했다. 고양이로부터 시작된 힘은 나를 실행에 옮기게 해주었다. 아이들 방에는 높은 책장에 책이 꽉 차있었다. 정리를 못 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아이들 책상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특히나 둘째는 날 닮아서 쪼물쪼물 뭔가를 많이 만들고 하나도 버리지 못 한다. 친구들에게 우리 딸 책상을 보여줬더니 하는 말.     


“오현정 딸 맞네.”     


아이들이 못 치우면 엄마가 치워주든, 같이 치우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잔소리만 하고 모범을 보이지 못 하니 변화가 없었다. 급기야 책상 구석에서 숙제를 하던 아이들은 슬금슬금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그 방은 답답했다. 




책을 하나하나 꺼내 들여다봤다. 예전에 정리컨설턴트와 정리를 해본 덕에 잘은 못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충 방법을 알았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는 다 빼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책을 정리하는 건 며칠이 걸렸다. 다행히 책을 원하는 친구가 있었다. 집에 온 친구 차에 책을 싣고 보니 뒷좌석과 발 놓는 곳, 조수석까지 책이 꽉 찼다. 이사했다는 친구에게 절대 이 책을 한번에 다 꽂아주지 말고 조금씩 꺼내줘서 아이가 읽을 수 있게 도와주라고 말했다. 당근에 팔기도 하고, 나눔도 하고, 안 가져갈만한 책은 버렸다. 높은 책장을 빼내고 아이들의 책상을 옮겨주고 읽을 만한 책은 거실에 꽂아줬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중압감이 느껴지던 공부방이 가벼워졌다. 아이들이 자기 책상에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버리는 느낌은 꽤나 좋았다. 마치 살을 빼고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 들인 만큼 내보내야 할 텐데 내보내진 않고 들이기만 하니 쌓여만 가는 짐에 짓눌려 살았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나의 삶을 살지 못 하고 되는대로 살았다. 일의 순서가 없고 두서없이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았다. 온 가족을 챙기는 것이 힘들었다. 다들 하는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 유난히 힘들까.     


삶을 내가 끌고가는가, 끌려가는가.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을 내가 주인이 되어 하나씩 해내는가.

아니면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고 힘든지 모르겠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가. 

나는 늘 후자였다. 늘 상황을 탓하고 비난하고 불평했다. 

진짜 문제는 나에게 있음을 오랜 시간 나를 들여다보면서 깨달았다.      


정리를 한다는 느낌은 좋았지만 늘 그렇듯 일을 벌이기는 잘 하고 마무리를 잘 못 하는 내게 정리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일 속에 갇혔고, 어려웠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전에는 왜 나를 안 도와주냐고 짜증을 냈지만, 어느날 정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을 말하지도 않아놓고 왜 안 도와주냐고 비난하면 상대방은 얼마나 억울할까. 내가 화를 내면 남편은 늘 억울해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적당히 그 부분을 마무리지었다. 내가 상상하던 싹 치운 모습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일단은 멈추기로 했다.     


저질체력인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일주일 정도 치웠을 뿐인데 겨우 방 1개밖에 정리하지 못 했다. 다른 방으로 책장을 옮겨 부분적으로 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몸이 아파 며칠을 앓았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친구들도 남편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진짜 일 많이 했다. 대단해”

“원래 책 정리가 제일 힘들어.”

“이만큼 했으면 몸살 날 만하지.”      


주위 사람들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왜 마지막 정리까지 잘 해내지 못 할까. 이래서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겠어? 이런 환경에서 고양이를 키우다간 금방 애가 뭔가 주워먹고 탈이 나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깨뜨릴 거야.' 

정리를 해야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힘을 냈는데, 잘 하지 못 한다는 사실은 내게 큰 절망감을 불러일으켰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데 뭘 또 그렇게 새삼스럽게 느꼈을까. 어쩌면 나는 키워도 되고 안 키워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굉장히 강렬하게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창의적인 사람은 정리를 잘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 말은 비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말처럼(나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결혼을 했다) 그저 작은 위로를 건네는 말인 것 같다. 어쩌면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일지도 모른다. 




우울함은 일렁이는 물결처럼 마음 속에 스물스물 요동치다 어느새 갑자기 나를 집어삼켜버린다. 방어할 틈도 없이 한 순간에 꿀꺽.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그 날이 되어서일까. 깊이 가라앉는 마음을 부여잡고 몸을 눕혀 쉬었다. 


괜찮다,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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