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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Apr 29. 2022

우리집에 온 고양이

고양이를 데리러 가기 전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됐다.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양이가 처음 적응할 방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창고처럼 쓰던 방을 치우고 또 치웠다. 옷도 다 꺼내서 정리하고 안 입는 옷은 버렸다. 지난번 정리 때 많이 비워서 한쪽 벽에 있는 책장은 아래쪽을 비울 수 있었다. 그 방에는 남편의 취미생활인 세차용품도 가득했는데, 약품들이 위험할 것 같아 모두 베란다로 내보냈다. 오랫동안 쓰지도 않는 여러 물건으로 가득했던 화장대도 말끔히 치웠다. 75리터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이사 온 이후로 보지 못 했던 깔끔한 방이 되었다. 이 방이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였다.    

  

고양이는 일단 집에 오면 방에서 나오는데 일주일 정도 걸릴 수 있다고 들었다. 일단은 그 방만 깔끔하게 만들었다.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날 아침까지 우리는 열심히 치웠다. 거실로 나온 쓰레기들을 처리하느라 남편은 집에 있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동장에 부드러운 담요를 깔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 순간 만큼은 고양이를 데려오는 기쁨보다 아가를 보내는 엄마고양이가 밤새 새끼를 찾지 않을까, 엄마와 형제와 늘 붙어자던 아이가 너무 허전해서 적응을 잘 못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가기 전 엄마 아빠 고양이에게 줄 간식을 샀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엄마아빠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면서 말했다.     

 

“예쁜 아가를 낳아주고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가 평생 행복하게 좋은 가족이 되어줄게.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 고양이와 충분히 인사를 한 다음 아가들을 봤다. 아이들이 이미 아기고양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있었다. 어느덧 2개월을 채운 아이들은 너무나 활발하게 잘 놀았다. 엄마와 형제 냄새를 묻혀 가면 좋다고 해서 담요 위에서도 놀게 했다. 이동장을 열었더니 엄마 아빠 고양이가 번갈아가며 들어갔다. 역시 고양이는 박스나 숨는 곳을 좋아하는구나. 이제 가야겠다 싶을 때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 쪽으로 갔는데 우리 고양이만 이동장 주변에 와서 한바퀴 돌면서 냄새를 맡고 맴돌았다. 

우리도 이 아이를 선택했지만 너도 우리를 간택했나보다. 선택과 간택이 맞아 참 다행이다.      


이제 가자고 이동장에 넣은 다음 안정감 있으라고 담요를 덮어줬다. 나오는 길에 엄마 아빠 고양이가 나른하게 햇볕을 받으며 우리를 지긋이 쳐다봤다. 편안하게 보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줄게.


집에 들어와서 고양이 방에 이동장을 내려놨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눈빛으로 나올까 말까 잠시 주저하더니 금방 나와서 방을 탐색했다. 우리는 방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고양이를 보면서 화장실과 스크래쳐를 알려줬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놀아주니 금새 긴장을 풀고 놀이를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우리와 한참을 놀다 와서인지 이미 익숙해진 것 같았다. 딸 무릎에 자리잡고 앉아서 잠도 들었다. 말로만 듣던 무릎냥이인가 싶으면서 참 신기했다. 그래도 방에서 나가는 건 주저하면서 겁이 나서 못 나갔다. 부모님도 고양이를 보러 오셨다. 형님네 고양이와 이미 익숙하신 부모님은 아기 고양이를 예쁘다며 봐주셨다.      


모두가 가고 나서 우리가 거실에 있으니 고양이는 조심하면서 한걸음씩 나와서 멀리서 지켜봤다. 조금 소리가 나면 휘리릭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또 나와서 구경했다. 조심스러운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밤에는 이동장에 넣어주니 거기서 자는 것 같았다. 새벽 6시쯤 작게 야옹거리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6시반쯤 우리가 나왔더니 반갑게 우리에게 왔다. 다음날은 우리가 나오기 전까지 야옹거리지 않고 문 소리에 놀라 도망갔다가 “루미~!”하고 부르면 걸어온다.     


이틀만에 루미는 우리집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루미~하고 부르면 토끼처럼 뛰어온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궁금해서 와서 보고 가느라 아기고양이가 잠을 며칠 너무 못 잤다. 얘는 정말 사람을 좋아해서 누가 오면 가까이 와서 냄새도 맡고 같이 논다. 자라고 놔둬도 궁금해서 자꾸만 얼굴을 들고 본다. 우리가 가까이 오면 그르릉 하면서 골골송을 부른다. 좋다는 표현이라던데 이렇게 좋은가 싶을 정도로 자주 골골댄다. 자면서도 손만 대면 자동으로 골골거리고 우리에게 몸을 부빈다.      


사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루미는 잠을 늘어지게 잤다. 너무 피곤했나보다. 참 신기한 건 얘는 사람 무릎 위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빠고양이를 닮았나보다. 책상에서 일을 할 때면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자리잡고 잠을 잔다. 아이들이 숙제를 할 때면 다리에 앉아서 잠을 자서 아이들이 움직이지 못 하고 숙제를 하는 장점도 있다. 바구니에 넣어두면 냥모나이트가 되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잔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던 집 정리 문제는, 단번에 해결됐다. 내가 모든 곳을 그림처럼 잘 치운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리가 있나! 다만 고양이의 영역이 넓어질 때마다 그곳을 자동으로 치우게 된다. 티비장 위에도 아이들이 만든 것, 잘 안 쓰는 오래된 오디오 등등이 있었는데 얘가 올라가는 순간 싹 다 치워버렸다. 너를 위한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구나.      


밥은 아이가 너무나 잘 챙긴다. 똥은 엄마가 치우라고 하던 둘째 아이는 어느새 자기가 고양이 똥까지 치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고양이를 돌보고, 놀아주고, 같이 살고 있다. 내가 좋은 것보다 너가 좋은 것을 해줄 줄 아는 것. 그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우리 아이들은 고양이를 키우며 배려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의 삶이 늘 좋기만 할 수 없겠지만 참 좋은 오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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