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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Apr 14. 2022

내가 막내 할 거야!

고양이에게 막내 자리를 물려줄 수 있겠어?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는 마음을 정해야 했다. 아깽이들을 보고나서 너무 오래 끌어봐야 고민만 길어지니 그 주 주말에 결정해보라고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일단 우리는 함께 진지한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10살, 13살 아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첫째, 일단 고양이는 귀엽다. 그거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둘째, 고양이를 키우면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장 우려한 건 고양이의 죽음이었다. 너무 슬플 것 같다는 게 큰 걱정이었다. 그러다 어떤 영상에서 본 이야기를 나눴다. 죽음은 너무 슬프겠지만 그 전에 더 많은 기쁨을 줄 거라고. 20년 후면 우리도 노년에 접어들고, 아이들은 20,30대가 될 거다. 와 생각만 해도 정말 엄청난 일이다. 고양이가 아파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셋째, 고양이는 위로와 사랑이 될 거다.

이제 곧 청소년이 되어 공부하느라,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고양이가 곁에서 따뜻한 눈길로 위로해주지 않을까. 밤늦게 공부할 때 고양이가 옆에 앉아있어 줄 거야. (정말 그럴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 상상 속에서는 그렇다.)     


넷째, 남편은 특별히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제 고양이가 오면 우리가 잘 돌봐줘야 하고 집도 열심히 치워줘야 해. 엄마는 그 모든 걸 혼자 할 수가 없어.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거야.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두고, 과자나 초콜릿을 아무데서나 먹고 쓰레기를 놔둬도 안 돼.”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이 있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막내가 오니까, 지윤이는 이제 누나가 되는 거야.     


지윤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랑받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 집 둘째는 벌써 10살이지만 여전히 아기였다. 아기이고 싶어하고, 아기처럼 우쭈쭈해 주는 걸 좋아한다. 우린 종종 질투의 화신이라고도 부르는데, 오구오구 그랬쪄요~!! 하면서 안아주면 정말 좋아한다. 아기나 고양이, 강아지 흉내를 내는 건 다반사. 정말 귀여운 우리 집 막내다. 


막내는 가족 중 누구보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을 참 좋아한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긴 한데, 막내의 자리를 내주는 건 생각지 못 했던 문제였다. 일단 고양이를 키우고 싶으니 그 자리에선 꾹 참는 듯 보였다. 우리는 이틀 동안 틈만 나면 책임감을 들먹이며 넌 이제 누나라고 강조했다.    

이튿날 저녁, 울음이 터졌다.     


“나 계속 막내할거야~!!!!! 으앙~ 누나하기 싫어~!!!”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우리 애기, 아기 때 엄마가 화를 많이 내서 힘들었지.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무서웠지. 유난히 예민한 네게, 내 마음까지 다 흡수하는 너에게 나의 폭풍 같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 혼자로도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배워가는 게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엄마가 그때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준 것 같구나. 

나는 어느 날 깨달았어. 내가 진짜 괜찮아져야 너도 괜찮아지겠구나. 내가 정말 삶을 가볍게 살아내야 너도 편안하고 가볍게,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겠구나. 뱃속에서 나왔지만 너는 아직 나와 연결되어 있구나. 내가 얼른 가벼워져서 너에게 내 짐을 나눠 주지 말아야겠다.'     


너를 위해, 또 나를 위해 난 많이 노력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너의 속도와 시간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칭찬했다. 어제보다 못한 오늘은 위로했다.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넘치도록 사랑을 표현했다.      


큰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넘치는 에너지로 충분히 사랑을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줄 잘 안다. 원래 성향도 아빠를 닮아서인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표현으로도 충분한 아이다. 가끔은 서운할 정도로 나는 나, 엄마는 엄마로 생각할 때도 있다. 잠시 남편과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원래 과한 걸 안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결국 엄마가 어떻게 해줘서라기 보단 생긴대로 사는 거다.     

둘째는 나를 닮았나보다. 언제나 넘치도록 충분히 표현해야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이제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쪽쪽 빨면서 사랑해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한다. 아이는 그런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첫째는 첫째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으로, 둘째는 둘째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해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어떤 시기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육아서란 육아서는 다 읽었던 나에게 그런 책들은 불안을 키웠다. 내 아이를 아이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기로 다짐한 이후로 나는 육아서를 많이 읽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그 시기에 잘 못 해줬어도, 내가 바뀐다면 모든 건 변화할 수 있다고. 다만 시간이 걸린다. 회복하는 데는 우리가 힘들었던 만큼의 시간은 걸리더라.      


울음을 그친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엄마는 지윤이가 아기가 아니고 큰 어른이 돼도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너가 뭘 잘하거나 예쁜 짓을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언젠가 지윤이가 크면서 엄마한테 못된 말을 해도 엄마는 널 사랑할거야. 어떤 모습이어도 난 널 사랑해. 그러니까 막내가 아니어도 엄마는 지금처럼 지윤이를 사랑하는 거야.”     




막내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지윤이는 나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좋은 마음도 힘든 마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리고 며칠 뒤 알게 된 반전 사실이 있었으니, 

쭈구리는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었다!!! 

지윤이는 누나가 아니라 언니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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