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너무 많이 걸린다 싶었다. 그래도 우린 조심하니까 괜찮을 거야 했던 말이 무색하게 우리도 걸리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뭘 그렇게까지 조심하며 살았을까. 우리가 아파 격리하는 동안 바깥세상에는 봄이 왔다. 집안에서 보기엔 꿈같은 날씨다. 다행히 1층집인 우리 집 앞에는 조금이지만 개나리도 피었고 벚꽃도 피어있다. 집밖에 나가는 게 한 걸음 차이인데도 집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건 다르다.
코로나에 정말 걸려보니 갇혀있는 시간이 정말 괴로웠다. 처음 며칠은 괜찮은 것 같았는데 괜찮다고 말한 내 입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은 내 안에 있는 온갖 안 좋은 감정을 다 끌어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픔은 내 한 몸 추스르기도 버거운 상태가 되었고 이 느낌은 곧장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연결되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에는 무게감이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하며 동물에게 좋은 환경도 제공해줘야 한다. 관심도 기울여야 하고 사랑도 줘야 한다. 그렇지만 나의 고민은 도를 지나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이 시점에 이렇게도 많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가.
첫째, 집정리에 대한 부분이다. 인스타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그림처럼 깨끗하게 정돈된 집을 바라보면서 내가 쓰레기 같은 인간처럼 느껴졌다. 오하우스 멤버들의 아름다운 집을 너무 많이 봤어..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았다가는 고양이가 뭔가를 집어먹거나 집안 물건이 깨지는 등의 사고가 연이어 일어날 것 같았다.
둘째, 나 스스로 육아에 다시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내 아이의 힘든 육아를 했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둘째를 낳았을 시점에 남편은 회사 일이 미친듯이 바빴다. 주말도, 명절도, 공휴일도 없었다. 난 언제나 혼자 애 둘을 데리고 다녔다. 남편은 지금은 회사 일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왜 그게 불만이냐며 또 남편대로 쌓여갔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히 힘들 때다.
그래도 그땐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견디고 이겨냈지. 정말 서럽고 속상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내 스스로 예견된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불안함이 치솟은 토요일, 남편과 잠시 둘이 나와 걸으면서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했다. 내 상태가 지금 좋지 않으니 이 모든 게 당신을 비난하려는 건 아님을 미리 말하면서. 그날의 감정은 나에게 약간의 공포감을 줄 정도였다.
셋째,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마음이다. 분명히 ‘내가’ 관심이 생겨 ‘내가’ 키우고 싶었다. 자꾸만 고양이 영상을 찾아서 보고, 고양이 키울 때 주의할 점들을 알아봤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가장 괴로운 건 이렇게 변덕스러운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장단점을 따져보고 선택하면 그에 대한 적당한 책임을 지면된다. 이렇게까지 과도한 걱정을 하는 모습을 정말 싫었다.
이 마음이 뭘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불안함이었다. 그런데 그 불안함의 정도가 지나쳤다.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불안함.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괴로움.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은 어려움이 크게 닥쳤을 때 오지 않는다. 어려움이 크게 닥쳤을 땐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이겨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도 직장을 그만두고 새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모님이 갑자기 그만두셨을 때. 남편이 너무 바빠 오로지 내 손으로 아이를 키워야 했을 때. 엄마에게 치매가 와서 함께 아파했을 때. 아이와 엄마를 함께 돌봐야 했을 때. 아이의 분리불안으로 내 가게를 접어야 했을 때. 그리고 그 분리불안을 함께 이겨내던 과정.
이 모든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때마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들은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나는 이겨내기 위해 상담도 받았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고 은혜를 받기도 했다. 덕분에 난 많이 괜찮아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제 많이 괜찮아진 것 같은데 문득문득 우울한 마음이 엄습해올 때가 있다. 격리가 풀리고 벚꽃을 구경하는 인파 속에서 운동해보겠다고 나와서는 혹시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멀리 가지 못 하고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벌써 몇 년째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하는 눈빛을 보낸다. 다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사연 없는 집은 없다고. 그런 시선을 느끼며 더 이상은 친구에게도 입을 닫는다. 그냥 적당히 밝을 때만 보이지 뭐.
가슴이 툭 내려앉는 사실은 정말로 내가 크게 우울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내가 봐도 이유가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걸까. 이 사실은 나를 더 비정상적인 인간처럼 느끼게 했다. 정상이 뭐길래.
잠을 자다 깼다. 아직도 남아있는 코로나의 후유증으로 새벽에 배가 아팠다. 다시 자려고 하다가 기도를 했다.
“도와주세요. 너무 불안하고 걱정돼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가슴이 뜨거우면서 힘들었다. 기도를 하고 예배영상을 봤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이었다. 두려움, 불안 가운데 살았던 제자들에게.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명을 맡기면서 그들을 콜링하셨다.
“나는 너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잘 알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근심과 걱정을 내게 맡기지 않겠니?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네가 내 자녀가 되면 내가 너를 변화시켜줄 거다. 새롭게 해주고 큰 비전과 사명을 가진 멋진 인생을 살게 해줄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주된 이야기였다. 목사님이 만난 훌륭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평생을 일과 가정, 인간관계, 취미까지 완벽주의로 무장하며 살아왔는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완벽한 세팅으로 인생을 살고자 했다. 예배에 가서도 완벽주의를 내려놓지 못 했는데 주님께서 긴장하고 있는 그분께 ‘이곳에 와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돼. 이곳에 와서는 편하게 지내렴.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다.’ 이런 메시지를 강렬하게 받으셨다고 했다. 지금까지 고집해온 완벽주의의 틀을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서 자유함을 느끼면서 사역하니 얼굴도 인격도 삶도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는 말씀해주셨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내가 고집한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내어놓는 것이구나.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내 삶을 드리면 내 인격을 변화시켜주는 구나. 내 인생과 운명을 변화시켜주는 구나.
이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구나. 가까이 오길 바라시는구나. 이렇게 불안한 마음은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닌데. 새벽잠을 설친 나는 힘들었지만 아침에 몸을 일으켜 예배당에 나아갔다. 오랫동안 온라인 예배만 드리다가 아주 오랜만이었다. 나 혼자 예배당에 가서 앉으면서부터 펑펑 울었다. 찬양소리가 입을 열 수도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나를 위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찬양해주는 것 같았다. 무슨 찬양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찬양이 계속됐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라는 마음이 들었었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었다. 그때 내 마음에 들어온 따뜻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
그래 내가 한 게 아니었는데. 아이들을 위해 나를 변화시키려 애쓰고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없어 무너져 울 때 그렇게 고백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주님께서 해주세요.”
그 모든 게 은혜라는 사실을 고백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또다시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지나치게 짓누르고 있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내가 잘나서 얻은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이다. 내가 할 것은 내 손에 든 것, 내 욕심,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 뿐이다. 내가 잘하기 때문에 뭐든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면 주님께서 해주시는 거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지난 며칠간 말씀하시고 말씀하셨는데 알아듣지 못 했다.
예배를 마치는 찬양에서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양이를 키우는 일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고 걱정되는 마음은 똑같지만 내 부족함 다 아시는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다 채워주실 것이 믿어졌다. 지난 며칠이 지옥처럼 마음이 널뛰고 괴로웠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쩌면 고양이는 내 부족함을 잊지 말라고 보내시는 것이 아닐까. 고양이로 시작된 이 모든 마음은 하늘과 땅속을 오갔다. 참 별일 아닌 걸로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