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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09. 2024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한 걸까?

목적지가 없는 배는 거친 파도를 만난다.

석사학위 논문을 통과한 그날. 난 큰 성취감을 맛보았다. 과정이 고통스러웠기에 더욱 끝맛이 달았다. 자퇴하고 계속 펜을 놓지 않은 결과 이제야 자퇴생 콤플렉스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은 평온함까지 느꼈다. 물론 논문 하나가 내 삶을 크게 바꿔놓거나 직장에서 다른 기회를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지도교수와 마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논문 쓰는 법에 대한 책들을 읽고, 스스로 참고문헌을 찾고, 인용하고 수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조금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무엇이 궁금하면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관련된 책을 사서 무작정 읽었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이 광범위하게 넓게 설명하는 것들이 많아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한 권의 책으로 배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권을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뭔가 작은 현상을 이해하고 해소하기에 힘들었다. 그런데 논문 찾아보는 법에 익숙해지니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이제는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전문지식을 얻고 싶으면 바로 학술정보를 검색해서 관련 논문들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정확한 정보를 쏙 얻고 시간도 절약되었다.


게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논문을 쓰는지 알게 되니, 어디서 어떤 정보를 찾으면 되는지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을 정상적인 시기에 좋은 교수님들에게 일찍 배운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지름길이 있었는데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겨우 도착한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적어도 딸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고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공부라는 것이 그냥 지루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재미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정보와 호기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 아빠의 경험을 통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석사를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아파서 간호도 해야 했고, 가족과 다툼이 잦아져서 그 부분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 배우자들은 과연  나와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느꼈을까?'


예전 같으면 그냥 혼자 추측했을 텐데 나는 어느덧 논문을 검색하고 있었다. 두근거리도 했다. 혹시 관련 연구가 있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몇 편의 논문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자료를 다운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결혼한 분들의 경험을 질적연구를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많구나.'

'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구나.'

'비슷한 이유로 가정을 지키고 있구나.'


논문이 딱딱한 글 덩어리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보낸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르고 나는 다시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신없이 뭔가를 향해서 달려왔는데 갑자기 목적지를 잃어버린 그런 허무함이 밀려왔다.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우며 바쁘게 달렸으니 이제 좀 나를 위한 휴식을 가져도 된다고 스스로 말해도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냥 시간이 아까웠다. 멈춘다고 누가 욕할 사람도 없는데 그동안 만들어진 습관 때문인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허무함도 나를 괴롭혔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속한 집단은 그런 보상을 바라기에 너무 취약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달렸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아무리 달려도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내 인생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대책 없는 방황만 해야 하는지 지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만족을 느끼는 감각이 고장 났나 싶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서 편하게 뭔가 취미를 즐기면서 퇴근 후 뭔가 쉬는 시간을 마음 편히 가질 수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석사학위를 받고 멍하게 보낸 시간은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 물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압도했기에 그동안 바빠서 미뤄두었던 재테크 관련 을 잔뜩 사서 읽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고장 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뭔가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에 만족 못하고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라서 뭔가를 계속 채우면서 살아야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박사까지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더 힘들 것이 분명하고 또 그 과정이 나를 지치게 만들 것을 분명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상처받고 힘들었어도 또 다시 연애하고 아파하고 또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최종적으로는 나는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서 목표 때문에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았다. 그냥 나란 사람은 뭔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게 공부는 그냥 과정의 행복을 끝없이 주는 선물 보따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5개월의 방황끝에 박사과정 입학을 위해 원서를 접수했다.


접수 후 다시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가 밀려오면서도 동시에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설렘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과도 다문화 학과로 정하였다. 그곳에 분명 더 나은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다문화학 박사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 속에 비록 몸은 늙어가더라도 내면은 더 젊어지고 포용력도 늘어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 위에 학위는 없으니 그곳이 종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바쁘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입학하게 되면 또 어떻게든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잘 선택했다고 자신을 응원했다.


만약 결과가 뚜렷하게 무엇인가 인생에 큰 빛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도전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퇴근하고 정신없이 제2의 출근하는 삶이 조금은 버겁다고 해도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을 보냄에 있어서 그냥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것보다는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에 입학을 위해 면접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기다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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