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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20. 2024

늦었다고 하는 그 순간이 바로 기회일지도 모른다.

자퇴생 낙오자가 40살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 했다. 붙어도 걱정되었고, 떨어질 경우 표현 못할 실망감이 나를 억압할 것 같았다. 원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최종결정을 기다리는 과정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합격도 안 했는데 머릿속은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장과 학업을 어떻게 병행할지 전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팔자 좋게 공부만 몰입해서 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었다. 게다가 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이나 새로운 출발을 하루에도 몇 십 번씩 계획하고 있던 내게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 여러 가지로 계획이 수정되어야 했다. 


계획 중에는 퇴사 후 지방을 벗어나 자녀가 초등학교 2년이 될 때 최소한 도시권으로 이사할 계획을 잡았지만 학교를 다니게 되면 지금 사는 곳에서 최소 1년은 더 살아야 했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사한 후 근처 대학원을 찾는 방법도 있었지만 다문화학과 박사과정이 개설된 곳이 아직 많지 않았기에 그 또한 쉽게 생각할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석사 논문 이후 조금은 논문 공포증 비슷한 것이 생겨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지도 않는데 벌써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포기해야 하나.'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현실적으로도 생각했다. 학력 콤플렉스는 석사 졸업으로 충분히 씻어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공부하는 과정과 그 분위기를 내가 사랑하는 것은 충분히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40대 가정이 있는 남자가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것도 돈벌이를 보장받는다는 확신도 없는 일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공부를 하게 되면 시간이 촉박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매일매일 자라는 자녀와 보낼 시간도 줄어들고, 뭔가 사적인 관계도 줄어들고, 이직을 위한 확실한 자격을 공부할 시간도 줄어들게 되는 것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딸아이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는 중요한 시기라 더 망설여졌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그 시간이 아빠와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시간을 보낼 유일한 시기라는 것을 내 성장과정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그 시절 추억들이 나중에 커서도 크게 남고 평생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을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고 한없이 느꼈기 때문에 하나뿐인 딸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집중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 


이런 안 되는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발전하고 싶었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지원을 포기하면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나중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하더라도 일단 입학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많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현실을 넘어 무엇인가 이상적인 것에 마음이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진급을 시켜준다고 남으라고 했을 때도 자비로 필리핀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에는 뒤도 안 돌아봤다. 물론 다녀오고 후유증으로 직장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진급도 계속 밀려서 마음고생도 했다. 그런데 필리핀 1년 유학생활 기억이 너무 아름답기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그 선택을 할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그냥 말하고 시키는 대로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을 선택해야 후회를 적게 할 수 있다고 뭔가 체면에 걸린 듯 반복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앞선 걱정을 하기보다 면접 준비를 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관련 논문도 찾아서 읽어보고, 대학원 홈페이지도 살펴보고,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예상 면접 질문도 적어보았다. 그렇게 퇴근하고 준비하고 준비했다. 제대로 준비 안 하고 떨어지면 미련을 가질까 봐 싫었다. 


그렇게 마흔에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 매일 퇴근하고 저녁시간을 녹였다. 


'조금 많이 늦은 건 아닐까?' 

'만약 합격해서 수업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박사과정은 어떻게 다를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기심은 점점 더 갈망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학과 사무실에서 수험번호가 문자로 발송되었다. 그리고 면접 순서도 나와있었다. 드디어 순간이 왔구나 싶으면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며칠 후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분위기는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여겼다. 교수님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바로 질문을 받았다. 바로 지원동기에 대한 알고 싶다고 하셨다. 차분하게 준비했던 데로 지원한 동기를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한국인 배우자이고, 다문화자녀를 한국에서 양육하는 아버지이라고 첫 문장을 말하며 관련돼서 석사 때 쓴 논문과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다문화라는 타이틀 달고 한국에 살면서 느낀 점과 불편함을 바탕으로 다문화 연구를 통해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교수님은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내 독특한 배경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셨다. 나는 그 호기심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아니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행복했다. 뭔가 독특한 가족 취급을 받고, 어떻게 가족을 만났는지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접근하는 그런 주변 사람들과는 뭔가 근본적으로 호기심을 표현하는 방식과 태도가 달랐다. 뭔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내가 원하는 곳에 온 것이 맞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거나, 연구를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즐겁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과는 최종적으로 심사 후 공지 되겠지만 꼭 같이 연구하고 싶다고 긍정적인 말로 면접 마지막 말씀을 교수님은 남겨 주셨다. 떨어져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도 떨어지면 다음 학기에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더 정확한 목표를 갖기에 충분했다. 


일주일이 흐르고 학교에서 합격자 발표가 되었으니 사이트에서 확인하라고 연락이 왔다. 바로 모든 것을 멈추고 바로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인적사항을 넣고 결과를 클릭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이렇게 나는 마흔에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조금은 억지로 집안 핑계를 대며 잘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마치고 바로 자퇴했던 그날부터 나는 사회적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낙오자였다. 이 사회는 냉정했고, 그 빈 공간을 그 어떤 확실한 능력으로 덮을 수 있는 간단한 것은 절대 없었다. 그냥 어린 나이에 뭐든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함과 무모함으로 나는 온몸에 상처가 나도록 밖에서 굴렀다. 

복학이라는 단순한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결정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 돌고 돌았다. 그러면서 자투리 시간을 만들고 남들 놀 때, 잘 때 검정고시부터 전문학사, 학사 그리고 석사까지 조금은 느리지만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멈추지만 않으면 언젠가 골인지점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23년이 흘렀다. 이제 거울을 보면 젊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저씨의 향기가 강하게 풍기지만 지난 시간이 서럽지는 않았다.  나름 시간을 알차게 채워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 월급 루팡하면서 편하게 퇴근시간을 즐기며 살지, 사고 고생을 한다고 내 행동을 이해 못 하곤 했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아야 살아지는 사람도 있다고 그냥 웃으며 말하곤 했다. 


지나간 시간을 지금은 정리해서 글로 남기고 있지만 나는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대학원을 지원하지 않고 23년도를 보냈다면 지금 이 순간 막연한 상상과 후회로 글을 남기고 있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뭐든지 그랬다. 해보고 실패하면 단념도 빠르고 다음 목표를 찾기도 편하다. 시도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그 일을 인생 뒤편으로 후회 없이 넘길 수 있었다. 넘기게 될지 페이지가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내게 박사과정도 그 도전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조금은 벅찬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력을 꾸준히 높였기에 지원이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포기했더라면 나는 아직도 검정고시 고졸 학력에 머물러 있었을 테니까.


주제넘지만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무엇인가 망설이고 있다면 쉬운 포기를 선택해서 인생 뒷면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부분 포기를 선택할 때 언제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포기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서 당연스럽게 포장한다. 물론 모든 것은 자기 선택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도전이라는 놈을 인생에서 잃게 된다. 적어도 포기가 습관이 되는 인생보다는 넘어지고 다쳐도 도전이 습관이 되는 것이 한 번뿐인 인생에 덜 미안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주변에도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하나같이 입에 후회를 달고 산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척하지만 뒤에서 끝없이 수군거린다. 그리고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한 사람이 실패하고 넘어지기를 숨죽여 바라고 기다린다. 만약 넘어지면 안주한 자기가 맞다고 사고 고생하며 살 필요 없다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남이 성공하면 배 아파하면서 그 사람은 자신과 다른 여건과 환경을 가졌다고 또 다른 합리화와 시기를 한다. 그런데 이런 남 걱정도 참 고맙기도 하다. 정말 사람이 바쁘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으면 남 걱정할 여유가 없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정신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늦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경험해 보면 안다. 입학하고 깨달았다. 마흔에 시작하는 박사과정이 절대 늦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나는 마흔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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