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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Feb 06. 2024

도망치는 것이 아니고 꿈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인생 종점에 도착할 겁니다. 

오랜만에 존경하는 선배님께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즘 내 근황을 물어보셨다. 나는 퇴사(전역)를 결정한 것에 대한 말씀드렸다. 고민을 상담했던 시간도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경험자로써 소중한 조언을 해주셨다. 


"만약 지금 있는 곳이 싫어서 그래서 나오는 거라면 밖에 나와도 똑같을 거예요. 나도 그걸 나와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혼란스러웠죠. 그런데 알게 되었어요. 나는 회피한 것이 아니라 꿈을 찾아서 나왔다는 것을.."


멋진 말이었다. 그리고 내게 딱 필요한 한 문장이었다. 물론 대학원에 들어가고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고민을 생각으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꼬박 몇 달을 노트에 쓰고 또 썼다.


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짧은 글들이었다. 본능적으로 선배님의 말처럼 염증 같은 그런 통증 때문에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할까 봐 두려웠다. 홀몸이라면 조금은 더 가벼웠을 텐데 내게는 무너지면 안 되는 큰 이유가 삶에 존재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어쩌면 대학원도 뭔가의 대안 중 하나였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한 도전이었다. 40년을 살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고 한심했지만 그럼에도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그래야 끌려가는 인생에 나를 던져두고 훈수를 두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의 1년은 참으로 꽉 찬 시간이었다. 정말 서로를 위한 열정의 경쟁을 했다. 발표를 해야 할 때면 조금 더 정리를 잘해서 도움을 주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다른 분들의 발표를 들으면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감동받았다. 교수님들도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완벽하게 달랐다. 열정도 넘쳐나고 특히 학생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저녁을 거르면서까지 학교에 가도 행복했다. 


여기서 얻는 에너지와 내 노력이라면 나가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물론 사는데 행복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이자 현실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인생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인 듯하다.


이런 마음 가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좋은 성과도 있었다. 처음으로 쓴 소논문이 KCI등재지에 게재되었다. 석사 졸업 논문 이후에 2번째 논문이었다. 고생고생하고 퇴근하고 늦은 밤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시련도 있었다. 첫 번째 게재는 불가 판정을 받아서 몇 달 후 수정해서 다시 도전하였다. 그렇게 몇 달을 투자해서 얻은 결실이었다. 게다가 나름 글도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석사 논문과 비교하면 발전이 있었다.


학회에서 피드백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지도교수님과 상의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경험 때문에 퇴사를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밖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내가 경험한 이런 과정들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모두 이 정도의 노력과 과정을 거친다. 성장을 꿈꾸는 사람들은 더 높은 성취를 위해 자신을 과감하게 던진다. 그래도 용기가 났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한 걸음씩 꾸준히 걷다 보면 스스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분명 내가 원하는 그 어딘가에 내가 멈출 수 있을거라고. 


막연하지만 확신처럼 다가왔다. 그렇다고 뭔가 밥벌이를 할 만한 확실한 것을 잡은 것은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24년도 아직 1년 동안 대학원을 더 다녀야 하고 나는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에서 벗어났기에 조바심을 가진 상태로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는 종합시험도 있을 것이고, 등재지에 소논문 한 개를 더 발표해야 하고, 졸업 논문도 남아 있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더 많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많이 걸어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글을 쓰면서 자퇴생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22년 전 나는 희망을 품기에 너무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기력했고, 희망을 꿈꾸지 못했다. 눈앞에 벌어진 것들을 몸을 써서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달리 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작은 속삭임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었다. 돌아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한 살의 나이에 텅 비워져 있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펙이나 자격증을 가지고 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속이 찬 시간이란 도전과 실패의 경험으로 채워진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브런치북에 언급하지 못했지만 중간에 포기한 일들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배우고 도전함에 있어서는 부정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고 봤다. 가는 도중에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아닌 것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작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대학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내가 작성한 여러 가지 꿈 리스트 중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늦은 밤까지 같이 연구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내 모습을 상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쉽지 않은 삶처럼 보였지만 공허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젊음에서 조금 벗어난 내려 막을 앞에 두고 있는 아직은 덜 성숙한 아이 어른의 모습을 한 마흔이지만 무엇인가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늙어가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인생으로 보였다.


아직은 방황하고 있다. 왜냐면 너무 높은 장벽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좋지 않은 학벌을 가진 내가 정교수로 임용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교수님들 프로필을 보면 명문대학교에 해외 석박사로 눈이 부시는 이력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사이버 세상에 허우적거린 그런 애송이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반절 달려온 것 첨에 남은 반절도 달려갈 작정이다. 


지독하게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걸 알지만 박사과정이라는 종점에 도달하고 싶다. 내가 일할 곳이 학교가 될지 힘든 노동현장의 일꾼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종점에 가서 다음 버스를 기다려보려고 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적으로 많은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욕심도 많습니다.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이제 그만 좀 배우라고, 지금까지 이것저것 한 것만으로도 먹고살기 충분하다고!"


칭찬처럼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 없고 용기가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남들 시선을 의식했기에 자퇴생을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제 자신이 대단해졌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고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력하면서 살아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동안 정말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너무 많은 것들에 욕심을 가져서 제가 벌을 받는 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왜냐면 어떤 사람들은 정말 단순하게 살아도 저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들을 활용하면서 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넘기는 사람들을 만나면 때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준비해도 불안하고 미래가 어둡다고 느껴지는데 어쩜 저렇게 평온할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살다 보니까 그냥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니까. 그래서 그 사람은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기 때문에 멈춤이라는 옵션을 선택한 것이라고요.


물론 저도 멈출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착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멈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꿈 많은 사춘기처럼 마냥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물론 20년 동안 저를 지켜준 커다란 울타리인 직장을 곧 그만두게 되면 차가운 현실에 얼음처럼 굳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저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적어도 지루한 인생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방황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무모함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용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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