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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30. 2024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에서 마흔살 나는 막내였다.

공부하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네비에 학교 주소를 찍었다. 마음이 요동쳤다. 가고 싶고, 원했던 곳을 가는 것이라서 첫 여정이 설레었다. 마치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길은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학교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주변에 쇼핑을 위해 갔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적이 달랐다.


나는 40분 동안 운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우선 박사과정에 입학한 다른 선생님들도 궁금했고, 교수님을 다시 뵙는 것도 마음 가짐이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화면으로 교수님을 보며 공부한 시간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물론 석사 때는 학교를 가긴 했지만, 특수 대학원이라 많은 배려가 있어서 횟수가 적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그 어떠한 곳보다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입학한 곳이라 많이 떨리기는 했다.


내비게이션이 3분 남았다고 목적지를 안내했다. 그리고 고속화 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앞에 학교를 안내하는 큰 간판이 보였다. 내 시선에 학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넓은 평지에 펼쳐진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높은 담도 없었다. 배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이게 모두에게 오라고 큰 손으로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단조롭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웅장한 정문을 통과해서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안내판을 보며 찾았지만 초행이라 주변을 몇 바퀴 돌아야만 했다. 차로 돌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정돈되어 있었다. 학부생들로 보이는 젊은 학생들도 보였다.


나름 비장한 표정과 밝은 웃음소리를 퍼트리며 큰 건물에서 한 두 명씩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자유롭게 캠퍼스를 누비는 맑은 영혼들도 많았다.


같은 지구땅이지만 다른 곳 같았다. 공기와 분위기가 희망에 가득했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내가 느낀 감정은 학교의 수준을 따지는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젊음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며 더 나은 삶은 꿈꾸는 그런 분위기에서 오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운을 받으니 내가 원하는 곳에 제대로 왔구나 싶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벽면에는 오리엔테이션을 알리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조금 많이 어색할 거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 함께 공부할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발걸음에 힘이 붙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3층을 누르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었다.


면접 이후에 본 교수님은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밝게 웃으며 내게 어서 오시라고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자리에 앉아서 나는 빠르게 다른 분들을 살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마도 마흔살 내가 막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금 시간이 흐르자 다른 선생님들도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참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왠지 모르게 지성이 넘쳐흘러 보였다. 우리는 교수님이 직접 타주는 커피를 하나씩 받아 들고 어색하게 시선을 이곳저곳 옮기며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중에 몇 분은 이미 교수님과 상당한 친분이 있어 보이는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셨다.


모든 선생님들 다 오고 교수님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리드해 주셨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라서 신기했다. 마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교수님의 자기소개를 이어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외모로 대충 살펴봐도 엄청 어르신들이었다. 그중에는 정말 나이 든 분도 계셨다. 그런 분들을 보니 존경심이 절로 나왔다.


 늦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여기 와서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배움에 있어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다행히 첫 번째 소개 순번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집중해서 어떤 분들인지 경청했다. 짧게 소개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자신의 업적과 하는 일을 상세히 말해주시며 명함까지 주시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내 차례가 돌아와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교수님은 반갑게 웃으면 나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주셨다.


조금은 어리둥절했지만 교수님의 관심이 좋았다. 잘 듣고 보니 교수님의 석사 제자분들도 계셨고, 다문화 관련하여 예전부터 교수님과 사적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신 분들도 계셨다. 완전 초면인 사람은 몇 명 안 되어 보였고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나였다.


교수님은 연구가 좋아서 진심을 다해서 자기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정말 기대가 되는 선생님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나는 쑥스럽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되도록 짧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나는 이 자리에 이런 분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것 자체에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멈추지 않았기에 올 수 있는 자리였다. 대단한 것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한 걸음씩 쉬지 않고 조금씩 했을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많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학위만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부끄럽게 공부했다.


전공과 연계성이 없다고, 일하면서 공부했다고, 사이버라고 핑계를 늘어놓을 필요 없이 학력에 맞는 전공지식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계속 갈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일터에서, 맺는 관계에서도, 가정에도 노력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스스로 조금 창피한 부분 중 하였다. 검정고시를 거쳐 학점은행제로 전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편입해서 사이버 대학에서 상담학 학사를 받았다. 이후 다시 학점은행제로 외국어로써의 한국어교육을 전공해서 학사 학위를 또 받고, 2년 후 상담학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을 했다.


학력을 중시하지 않는 조직에 있었기에 그냥 스펙정도로 인사관리표에 기록되었다. 직무에 관련성이 크게 없어서 졸업을 했어도 집중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누가 찌르면 푹 들어가는 그런 것이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 박사과정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석사 논문을 쓰면서 힘들었지만 전문지식을 쌓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한 가지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남들에게 넓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게 박사과정은 큰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물론 직장인 신분에 퇴근하고 학교를 가는 것이 큰 걱정이었지만 쪼개서 휴가를 써서라도 수업을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직장에는 미안한 결심이지만 매일 휴가를 쓰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방학도 있으니 내가 부지런히 집중해서 일을 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 지원할 때도 이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걱정했다.


여건이 안 돼서 등록금만 내고 시간만 날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여건이 좋아지기를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원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희망도 품었다. 이유는 내가 막내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게 더 많은 시간과 기회가 허락된 것 같았다. 항상 조바심을 가지며 뭔가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변 풍경과 유리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오랜만에 오디오북을 듣지 않고, 신나는 곳을 선곡해서 운전했다. 잠시 나만의 행복을 느끼다가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지금 아프지 않았다면, 아빠가 빨리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었다.


자퇴할 때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만 믿으라고 큰소리쳤고, 그 무책임한 어린놈의 말을 믿어 준 부모님이었다. 물론 돌고 돌아서 힘든 시간을 거치기도 했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인생이 조금 다채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믿음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의 운전대를 빨리 잡았다.


내 말에 책임지기 위해서 이빨을 꽉 깨물고 버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 중년의 향기가 풍기는 마흔, 한 여자의 남편, 직장에서 실무자로 지내고 있었다. 절대 지루하고 무책임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은 슬펐다. 그래서 혼잣말로 운전하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 아들 잘한 거지. 잘하고 있는 거지?"


만약 건강하셨고, 살아계셨다면 나 몰래 무척이나 자랑을 하고 다녔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께 오늘의 행복을 바치며 오랜만에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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