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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r 14. 2024

뭐를 계속 먹어도 배가 고프다.

여유를 가지는 것이 허기를 줄인다.

상담이라는 단어는 왠지 거창하게 느껴진다. 무엇인가 대단한 결심과 대단한 과정처럼 포장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면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냥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고 느끼고 변화를 경험하면 그것이야 말로 좋은 상담인 것 같다. 


나는 회기를 거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집중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해결되는 문제는 인생에서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들 중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죽도록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그런 것들에 목숨을 걸고 소중한 시간과 힘을 낭비한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그러했다. 

하루를 고민하고 한 달을 고민하고 일 년을 고민해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들에 나를 던지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했다. 단순하게 인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될 것을 가지고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붙잡고 그냥 시간만 보낸 것이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배우고 있는 과정이지만 이런 식으로 살면 인생에 다음 페이지는 절대 오지 않는다. 그냥 멈춰있는 것이다. 그것도 고통의 순간 그 자체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고민이 정체되면 고속도로에 멈춘 차보다 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진다. 영원히 막혀서 서서히 굶어 죽는다. 그리고 인생을 더 살다 보면 이처럼 정답 없는 문제들이 계속 늘어난다. 내 경우는 아버지 문제, 어머니 건강, 가족과의 관계, 자녀양육, 퇴사 등 계속 밀려왔다. 물론 어른이 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직장생활 또한 마찬가지이다. 


상담과정에서 나는 이런 내 문제들을 하나씩 던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냥 주머니에 들어있던 뭔가를 땅에 떨어트린다는 느낌으로 아니 버리려고 노력했다. 타고난 천성이 예민하고 미련해서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노력은 했다. 


선생님은 5회기를 넘기면서 나를 완벽하게 간파하셨다. 몇 가지 심리검사까지 하면서 성향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부끄러웠지만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처음에만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가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직접 개입하는 빈도도 조금 늘어났다. 조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상담기법에는 적당한 개입과 조언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결국 나라는 놈이 참으로 욕심 많고 거만한 놈이라는 것까지도 아시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면서 내가 어떤 일정으로 사는지 아시고는 내게 질문을 했다.


"바쁘게 사셔야 마음이 편하시죠?"


나는 그냥 웃었다. 


"불안해서 그러시는 거죠?"


나지막하게 맞다고 말했다. 사실이 그랬다. 불안했다. 욕심은 많은데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 뭐를 계속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먹고 먹고 또 먹어도 항상 허기졌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일정은 빡빡했다. 그 빡빡함속에 숨어서 현실을 도피했다. 그냥 나를 바쁘게 만들어서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피했던 것이다. 스스로 동굴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나는 안전하다고 외치는 맹수와 같이 생활했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내가 동굴에 들어가서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조용히 내 대답을 듣고는 약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왜냐면 내가 봐도 내 모습은 정말 지쳐 보였기에 어떤 감정으로 나를 생각할지 짐작은 되었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르고 선생님은 입을 열였다.


"새로운 것들을 더 하면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어 보여요. 지금까지 노력한 것만으로 넘치고 충분해요. 앞으로 나가면 돼요."


그 말은 큰 위로였다. 


불안해서 그랬다. 뭔가 부족한 것 같고 결정하면 후회할 것 같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 공허함과 두려움을 새로운 것들로 무작정 채웠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참 바쁘게 열심히 산다고 칭찬하지만 사실 속이 텅텅 비워져 있는 깨지기 쉬운 상태가 바로 나였다.


나는 잠시 침묵으로 시선을 피하고 웃으면 말했다.


"맞아요. 저도 힘드네요. 사실 이제는 뭐를 더 새롭게 할 힘도 없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요즘은 쉬고 싶네요.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게 불안해서 그래서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도 이제는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중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작은 성취를 계속하면서 확인하고 안도하고,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존감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가끔 여유도 부리고 게으름도 피우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때도 불안했지만 뭔가 추격당하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냥 조금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그 정도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쉬고 싶어도 바쁨에 중독된 지금 쉽게 태도와 행동을 고치기는 여전히 힘들다. 그럼에도 노력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선생님에게 들은 것처럼 어쩌면 정말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들만 가지고도 남들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냥 그냥 조금은 허술하고 어설프게 편하게 살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나와 같은 유형(ISTJ, 매우분명 성향)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너무 고통을 주며 산다고 말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도 그렇고 원리와 원칙을 준수하는 것들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족쇄가 된다고 말이다. 둘 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기대치가 높기에 뭐든 더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결과가 좋아졌다. 

그런 반복 경험은 완벽하게 일을 끝내고자 하는 행동의 원천이 되었고 결국 인정의 노예가 되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기준이 점점 높아져 버린다. 결국은 스스로만 그렇게 살면 좋은데 이런 관점과 가치관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대입시켜서 판단하는 잣대로 적용한다. 그래서 가족, 동료, 주변 사람, 노력에 대한 결과에 불만족이 더 커진다. 그냥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내 기준에 맞춰서 재단을 하니 언제나 뭐가 남거나 모자란다.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이런 내 기준을 자녀에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지 말자고 노력하고 노력해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을 다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자고 다짐하고 다짐해도 몸과 표정에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는 조금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고 만족하는 그 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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