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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Feb 03. 2024

예민하지만 날카롭지 않아요.

남자 나이 마흔 살 나는 상담실에 가게 되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마흔까지 흘러오면서 몇 번이나 나를 온전히 돌아봤는지 생각해 보니 내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돌보는 것에는 참으로 서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존재하기에 주변과 세상이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세상과 주변이 존재하기에 내가 있는 것이라고 당연시하며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물론 이런 생각은 오로지 상담의 결과물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이런 깊은 생각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퇴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가족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 포기하고 노력하면서도 이 삶이 맞는지 물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어떤 것과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부모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런 모든 걱정과 고민은 어쩌면 마흔이라는 나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상담사 자격증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내담자 경험을 하면서 완벽한 개방을 결심한 것도, 심각하게 나와 가족 그리고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건 딱 이 정도 살아온 마흔 살이라서 가능하고 깊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정도 나이를 먹으니 직장에서 경력도 쌓이고 나름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에 더 많은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서른 중반까지만 해도 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기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하나 둘 삶으로 돌아오면서 여유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자녀문제도 그러했다. 이제야 말도 통하고 딸도 초등학생이 되면서 손이 덜 가면서 예전과 비교할 때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이런 여유는 더 많은 걱정을 불러오기도 하고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상상하기도 했다. 

마지막 부부관계도 10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살면서 젊음과 늙음의 정확힌 중간지대 쯤 되는 마흔에 도달하니 우습게도 가진 것이 없었던 젊음을 갈망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이제 조금 먹고살만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게도 했다. 


정말 사는 게 바쁘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기만 바라던 그 시절에는 이런 여유를 부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냥 눈을 떠서 눈 감는 그 순간까지 허걱허걱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깊게 고민할 수 없었다. 그러니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고 심각해지지 않았다. 물론 고민의 씨앗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원인 없는 결과도 없다. 하지만 먹고살만해서 배가 불러서 하는 고민도 틀린 말은 아니었고 남은 시간에 대한 불안감에서 밀려오는 두려움도 맞았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이제 정확히 절반의 인생을 경험했다. 절반의 인생이 다채롭고 호기심 넘쳤으며 강렬한 기억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깊게 새겨두었다. 지나간 세월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면 앞으로 시간은 조금은 단색이고 단조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마흔 이후에 보내게 될 시간에 대해 삶의 마지막 절반의 시간이 쓴다는 중압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 다시 바로 잡고 싶어 하거나, 강력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게 본능은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이제 육체는 이제부터 젊음보다는 퇴화에 가속도를 붙인다. 관리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남은 시간이 소중하고 걱정이 된다. 농담처럼 듣던 선배들의 푸념은 이제는 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농담이나 다 큰 어른의 엄살이 아니었음을 비로써 알게 되었다. 서글프지만 이렇게 이 순간이 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러 의미에서 마치 모든 것이 다시 출발된다고 느껴졌다. 내가 좀 이상하고 유별나서가 아니라 그냥 세월에 부딪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넘겨버리니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인가 변화는 필요했다. 그 변화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보여지는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이해와 변화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경험을 통해, 나를 봐서라도 이제는 안다. 사람이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고. 사람이 안 하던 짓거리 하면 곧 죽는다고. 이런 흔하고 흔한 말들이 떠도는 이유는 우리는 자신의 색깔을 사랑하라고 변화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인데 그러므로 변화가 아닌 다듬어지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조금 더 성숙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문장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예민한 성격'

'완벽주의자'

'내가 하는 만큼 남도 해야 한다는 직업관'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 혐오'

'가치관에 어긋나면 극도로 예민한 사람'

'실용적인 것에만 몰입'

'보이는 것보다 든든한 내면'


문장은 쏟아졌다. 그중에 관계적인 측면에서 예민함이 있었다. 포장하면 예민함이지만 그냥 표현하면 변덕, 까다로움, 내 마음대로 해야 함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예민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예민함은 신속한 반응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때로는 업무적으로 도움 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흔을 넘긴 어느 시점에서 나는 무작정 예민한 사람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아직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예민하지만 아주 날카롭지는 않다. 어린 시절 나의 예민함은 칼날과도 같았다. 그래서 가끔 주변이 다치곤 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주변이 다치는 것을 보기 싫었다. 내가 뭐라고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단말인가. 나름 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부작용으로 조금은 더 차가운 사람 또는 무관심으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칼날은 날카롭지 않았다. 


주변은 언제나 고요하다. 그들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아무도 모른다. 내면의 사춘기를 심하게 경험하고 있는 마흔한 살 지금이 나중에는 고마운 순간으로 남을 수 있다.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신경을 쏟는 그건 내 자체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날카로운 모습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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