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Jan 28. 2024

관계에 철벽을 친 이유는 너무 약한 사람이라서

남자 나이 마흔 상담이  필요하다.

나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흔히 방어기제가 높다고 말한다. 물론 대놓고 잘 말하지는 못한다. 조직이 폐쇄적인 것도 있고, 외적으로 풍기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자기 만족감이 넘쳐 남은 쉽게 판단하고 뭔가 훈수를 두려는 타입의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마흔이 넘으면서 이런 민감한 성격평가를 듣는 횟수는 점점 줄어갔다. 보통은 평가에 민감하다. 어린 시절 나는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른 후반을 넘기면서부터 가끔 날카로운 비판을 들어도 그냥 수긍 아니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살다 보니 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누구를 평가할 만큼 완벽한 인간도 없고 아무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평가일지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 앞에 벽을 두는 건 무엇인가 감추고 싶은 것이 많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방어기제라는 벽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의식하기 힘든 고통과 충격을 억압시키기도 하고, 회피하기 위해 현실로 인식하지 않고 부인하고, 모든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며 투사하고, 때로는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퇴행시키기도 한다. 상담이론에서 나오는 이러한 단계를 거치며 나도 나이를 먹어 왔던 거 같다. 


그러다가 삼십 대 후반에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실망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가져다 붙여서 구실과 변명을 만들고 불편하고 불쾌한 내 현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라고 나를 비관하기도 했고, 아내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방관했으며, 가끔 잘못된 방향으로 육아하는 아내로부터 하나뿐인 딸을 구하려 하지 않고 숨었다. 물로 내가 판단할 만큼 내가 완벽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말과 행동을 아낀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몇 번 시도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행동이 완벽하다고 강하게 믿는 사람에게 말해봐야 결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바로 자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몇 번의 아니 수십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 또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고, 아내도 내게 상처를 주었다. 이런 시간 속에 합리화와 퇴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나는 적어도 완벽하게 뻔뻔하지 못하다. 상처를 주면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지난 일은 상처를 줬어도 자신이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지 않고 완벽한 합리화를 한다. 


나는 이런 부분들을 2회기 상담 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하면서도 많이 불편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아내는 우리 딸이 완벽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양육하는 것이 완벽하게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아주 정 떨어지는 논리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딸이 걱정스럽고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딸은 뭔가 모르게 친구관계나 여러 가지에서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불안감은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걱정일지도 모른다고 마음 편하게 먹자고 노력도 했다. 내가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하지만 가끔 보이는 딸의 태도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걱정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이혼보다 이 가정에 머물러야겠다고 스스로 각인하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라도 딸아이 옆에 있어줘야 한다고, 마치 악당에게 딸을 구하기 위해서 단련하고 있는 주인공처럼 나는 나를 곱게 포장했다. 그것이 내 행복을 포기하는 불쌍한 결말에 도달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굳게 다짐해 버렸다.  선생님은 내 감정에 공감해 주셨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인생도 좀 살피고 돌아보라고. 물론 수많은 고민 끝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을 챙겼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나는 적극 공감했다. 정답은 없었다. 이렇게 집착하면 할수록 나는 더 심하게 망가져만 갔다. 그래서 그런지 일이 끝나면 집밖으로 더 많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퇴근하고 내 역할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무책임한 타입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성격을 타고났기에 자녀에게 해줘야 할 역할은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내가 상의도 없이 짜놓은 자기 방식대로 패턴이고 시간계획이지만 평화를 위해 거북해도 그 속에서 딸에게 내 역할을 했다.   


이렇게 같이 살지만 완벽히 심적으로 분리된 생활은 벌써 4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상담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한 것도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니 단단한 바위도 깨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담담하게 내 상황을 풀어내자 선생님은 나를 많이 걱정하는 듯했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말을 건네주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 자식의 의무에서 완벽하게 도망가는 것을 선택하는데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나름 잘 버틴 것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셨다. 바로 글쓰기로 내게 일어나는 견디기 힘든 최악의 것들을 승화시킨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어떠한 사건이나 행동, 충동 등을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형태와 방법으로 발산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로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승화가 고차원의 해소법이기에 그 많은 스트레스를 살기 위해 해소하고 있는 거라고. 적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매우 낮다고 사례도 설명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첫 번째 책을 쓰게 된 시기는 내 삶에 스트레스가 극도로 폭발한 시기와 중복되었다. 부부관계도 관계지만 어머니 치매진단을 받은 때기도 했다. 겉으로 멀쩡한 척 일터에서 행동하고 퇴근하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발악하였다. 아니 내 몸은 관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움직였다. 


받아들이기 싫어서 내면의 나는 미친 듯이 힘들어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라는 그 존재는 내 인생에 기둥 같은 존재이었기에 그 기둥이 무너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쯤부터 글을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보통 말로 힘들다고 표현하면 기대하는 만큼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대게는 어렵게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나이 좀 먹은 어른들은 자신의 부모님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며 지금의 내 상황도 그저 그런 인생의 한 페이지로 쉽게 만들어버렸다. 실망감이 크지는 않았다. 원래 우리는 이렇게 나만 생각하는 존재로 세팅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막다른 길 끝에 몰린 상황에서 도망칠 곳까지 없으면 뭐라도 하게 되는 게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냉정하게 글을 쓰면서 이런 글을 남기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 누군가 본다면 얼마나 하찮은 인간으로 취급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풀어야만 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닌 것을 알지만 멈출 수 없었던 건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싶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싫어한 적은 없었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간다고 느끼며 기분 좋게 살았던 삼십 대 초반까지는 주로 일기를 썼다. 가끔 그 당시 일기장을 열어보면 나는 지금과 다르게 희망이 담긴 글을 주로 남겼다. 물론 상황이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들에 대한 계획과 감정을 소소하게 담았다. 성취감을 느끼고, 반성도 하고, 그냥 솔직한 감정을 나 혼자 보기 위한 작은 일기장에 썼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십 대 초반에 아버지의 죽음, 결혼, 어머니의 치매를 거쳐서 마흔이라는 나이까지 흘러오면서 이렇게 변해버렸다. 


선생님은 글쓰기가 내게 좋은 치유가 되는 것은 확실하니 억지로 멈추거나 마음 표현을 절제할 필요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2회기 상담을 하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강하게 압박하며 살았는데 어쩌면 그런 죄책감을 나 혼자 가지고 힘들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만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에게 사소한 일로 큰소리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발산해도 뒤돌아서면 다정한 엄마로 돌변했다. 나는 그 모습이 징그럽게 불편했다. 왜냐면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 눈치를 극도로 보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그런데 막을 방법도 없었다. 이제는 그냥 눈치 보는 게 일상 된 딸은 가끔 엄마한테 엄마가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신경을 부린다. 이 나이에 보통 아이들도 저러나 싶다가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잘못된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워 내 자신을 자제하고 추슬렀다.


이런 상황까지 오도록 둔 것이 마치 무능한 아빠인 내 탓이라고 자책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이런 사람으로 살아온 내 가족은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람 눈에는 나도 이상한 사람일 것이 뻔했다. 어쩌면 내 눈에만 딸이 불쌍해 보이고 나만 괴로워하는 것일지도.


신기하게도 딸은 누구보다 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물론 가족이라는 작은 세상이 딸에게는 전부이기에 나중에 커서 엄마에게 보고 듣고 느낀 행동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표현하고 살아가겠지만, 그렇다고 내 딸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인생이 안 살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내게 해준 말처럼 내 딸은 커서 너무 잘 살지도 모른다. 미리 걱정한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미래를 알 수도 없으니 나부터 행복해 지라는 지인의 말은 정답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이 힘겨운 세상에서 40년 버티며 사람 취급받고 잘 살았으니 내 딸도 충분히 잘 견디며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고 느낀 것은 마흔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단단함을 떠나서 내면의 단단함을 갖춰야 한다. 


누가 그랬다. 인생은 잠깐 행복하고 계속 힘든 거라고. 그 말에 공감한다. 어린 시절 나이 먹으면 세상이 내 것이 될 것처럼 착각했다. 나이 좀 먹으니 어렵고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라는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계속 달린다. 지쳐서 조금 쉬려고 하면 주변에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하늘로 떠난다. 아픔을 부여잡고 사람 구실하며 살다 보면 어느덧 내 몸이 고장남을 느끼고 모든 것을 희생해서 키운 자식들은 품을 떠난다. 결국 걱정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잠시 웃었던 그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힘든 순간을 계속 이겨내는 것만 같다. 


나보다 한참 선배님들은 퇴직해서도 걱정하며 산다. 이제 늦잠 잘 수 있는데 잠이 사라져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웃는다. 몇 십 년 동안 늦잠 자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하면 말이다. 그때는 젊고 몸도 팔팔했는데 왜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계속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이해한다. 아무리 벽을 높게 치고 살아도 어쩌면 그런 사람일수록 그 벽이 얇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 얇고 약해서 부서질까 봐 벽을 계속 높게 쌓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게 나였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마치고 오면서 생각했다. 오히려 벽이 낮아 보이는 사람이 더 단단한 벽으로 인생에 안전한 울타리를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들도 애로 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낮은 벽을 넘어 들어오려고 할 테니 힘겨울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벽을 높게 만들어서 보호받기를 원할 것이고, 벽이 높은 사람은 낮게 만들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 원망을 그만하고 나도 벽을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외롭지 않도록 누구나 내 벽을 넘어서 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https://brunch.co.kr/brunchbook/jadebooks

  

이전 04화 모르는 사람 앞에서 눈물이 나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