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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13. 2024

나는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나의 첫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을 받기 위한 일정을 잡고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기도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속마음을 남들에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게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에 서툰 것도 있고,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경계부터 하는 성격 때문에 2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오해를 받은 적도 많다. 그냥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20대 젊은 시절에는 그런 작은 반응에도 불편함을 느껴서 밤새도록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런 내가 40대가 되면서 많이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그 단단함은 외로움을 언제나 동반했다. 그랬기에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침묵하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뭐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 속에 내담자 경험이니 그냥 대충 넘기면 된다고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랄고 말해주는 주변 사람들도 있었지만, 10회기라는 상담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개방하기 위해 첫 상담 가기 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보통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단점이나 좋지 않은 속사정을 숨기고 싶어 한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도 도 있고,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선택의 여유도 생기기 때문에 충분히 가면 속에 자신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그냥 그냥 직장이나 가끔 참석하는 회식 자리에서 나를 충분히 감출 수 있었다.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그냥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면서 사람들이 적당히 좋아하는 그런 안주거리가 되는 시간 속에 같이 나를 두곤 했다. 물론 내 성격상 그런 시간이 절대 알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고립되고 쓸데없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막다른 골목 앞에서 도착해서 막막할 때 내 감정을 편하게 둘 그런 곳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온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서로 유대관계도 전혀 없는 그런 사람 앞에서 내 걱정거리를 풀어놓는 것이 당연 불편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상담을 받는 그날이 되었다.


상담실의 주소를 카톡으로 받고 퇴근 후 그곳으로 향했다. 보통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데 그날은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그래서 추억이 담긴 팝송을 선곡해서 볼륨을 높였다. 한편으로는 운전하면서 여유 있게 노래를 듣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여기며 나를 갑갑한 통제 속에 스스로 가둔 나 자신이 야속했다.

추억이 담긴 노래를 내 기억을 행복했던 시절로 안내했다. 그렇게 리듬을 맞춰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면 초조함을 기억 뒤편에 두기 위해 노력했다.


상담실 건물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3층으로 올라가서 겉모습은 조금 차가워 보이는 문을 열고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드렸다. 상담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짧은 만남을 포함해서 세 번째 보았지만 첫 만남보다 더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마주 보고 앉으니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민망했다. 그냥 고개를 쑥이고 있자니 왠지 자신감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눈을 바라보기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어색함을 알았는지 선생님은 사소한 질문으로 관계를 서서히 열기 시작했다.


과정 소개를 할 때 본 것도 있고 내 직업도 알고 있으니 나는 조금 경계를 풀고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말하는 동안 선생님은 차를 마시면 편하게 들어주셨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없던 일까지 지어내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아주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다고 미소로 화답을 주고, 상담 접수일지와 펜을 내게 주셨다.

그냥 요즘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들, 풀리지 않는 답답한 같은 감정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편하게 써달라고 하셨다. 나는 곰곰이 종이를 들여다봤다.


'요즘 나는 어떤 문제 고민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나..'


펜을 잡으니 너무 쓸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장에서 멀쩡해 보이려고, 아니 어쩌면 더 바쁘게 만들어서 퇴근 시간까지 정신을 방전시키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하지만 사실 가만히 있으면 머리가 터질 듯이 많은 걱정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그 걱정과 고민들은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걱정'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걱정'


나는 아주 짧고 간결하게 하나씩 머릿속에 고민과 걱정거리를 종이에 적어내려 갔다.


엄마의 치매, 부부관계의 문제, 자녀교육과 양육, 이혼에 대한 심각한 고민, 전역 후 미래, 개인건강문제, 엄마를 모시고 사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


써놓고 보니 내가 상담을 받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글을 보고 힘드셨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고민을 나열한 이유는 내담자 경험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도 있었다. 주호소 문제와 문제해결, 상담내용 등을 지도받고 내가 직접 기록해야 했다. 앞으로 상담에 대한 방향을 잡기 위해 중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적은 모든 것들에게 해서 아주 세부적으로 첫날부터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부부관계'라고 짧은 호흡을 한 후 답변하였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 가장 오랫동안 품고 있는 문제이고, 아직도 그리고 미래에도 특별히 어떠한 발전도 없을 것 같은 문제가 바로 우리 관계였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하냐는 물음에 몇 달 전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자기가 하는 건 다 옳고 자기가 소리 지르는 건 다 괜찮고, 이제 쳐다만 봐도 위협이 된다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딸아이 앞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 절대 용서가 안돼요. 아무리 인종이 달라도 이건 이해의 범위를 초과한 것 같더라고요. 얇밉고 그냥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그 뻔뻔함을 마주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지치는데..."


너무 빠른 자기 개방에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위태로웠다. 그제야 선생님은 내가 겉보기에 너무 힘들어 보였다고 내 첫인상을 말해주었다. 너무 지쳐 보이고, 피곤해 보이고, 우울해 보인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다.


내 인생 행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내 가정이 이토록 엉망이니 그것을 견디고 참기에 나는 너무도 미성숙하고 아직도 바라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것 같았다. 어쩌면 평생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 지 오래되었다.


조금의 머뭇거림 그리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한 것에 대한 어색함과 약간의 후회를 담고 첫 번째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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