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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30. 2023

내 삶에 주인공은 누구인가?

당신의 인생에는 당신이 있나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서서 머문 지 40년이 지났다. 흘러간 시간에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숫자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문득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혼자 많이 가졌다. 그러면서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밖에서 바라보았다. 항상 행동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내 인생인데 주인공처럼 살지 못한 그런 감정이 밀려오면서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그 외로움은 정말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고립되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아서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더 따뜻하게 사랑해야 할지에 몰라서 오는 그런 깊은 고민이었다. 


그리고 바쁘다는 이유로 40년을 살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남고 싶은지 정의를 내리며 걸어온 발자취는 많다. 그리고 그 발자취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곁에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더 시간이 흐르면 심적으로 황폐해질 것만 같았다. 


이런 두려움은 나약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에 갖게 된 사치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고민을 마음에서 꺼내 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렸던 주인공의 자리를 찾았으면 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주인공이었지만 나만 몰랐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고뇌에 시간은 결국 내게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정말 쉽지 않기에 이런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생긴 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일반적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 나름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들(다수라고 정의하고 싶다)이 경험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 나이에 도착했다.


그 과정과 시간이 조금 험난했다고 투정도 부리고 했지만, 남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들을 비슷한 시간에 선택하면서 그 결과를 어깨에 올려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마도 성인이 되면서부터 모두가 독립적인 선택을 시작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무리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3년 빠르게 사회에 나갔다고 해도 내가 경험한 정확한 사회생활은 21살 직업군인이 된 순간부터였다. 그 선택에 대해 항상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삶에 중심부에 두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이 군대이다. 그래서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었다. 물론 자유의 억압이 존재했고, 가능성에 한정은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마도 그런 경험이 연속적인 결과들을 만들고 자신감을 줬는지도 모른다.


다음의 큰 선택은 결혼이라는 관문인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결혼이라는 큰 결심을 하고 선택했다. 그것은 서른 초반에 결정되었고, 바로 임신한 아내는 딸을 출산했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나도 다시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 나라는 존재보다 다른 수식어가 더 익숙해지고 짊어진 짐도 늘어남을 느끼게 되었다. 아빠라고 불리고, 가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금방 적응해 나갔다. 그러면서 정신없는 일상에 나를 던지고 흘려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과 출산은 자신도 모르게 리셋버튼을 누르는 과정인 거 같다. 누구는 준비를 하고 버튼을 누르고, 누구는 준비도 없이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준비했다고 말을 하고 다녔지만 준비 없이 그 버튼을 눌러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글로 나를 돌아본다고 하더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래도 살아지고 저래도 살아진다. 시간은 얇밉게도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유난히 나의 30대가 그립다. 허둥거리면서 보낸 시간이 유난히 아쉽다. 그 허둥거림 속에서 어쩌면 가슴에 구멍이 생긴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부러움을 호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40대를 마주하는 새로운 마음을 갖고 싶은 것이다. 


요즘 80세까지 사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나이 40세는 인생에 딱 절반 산 것이다. 아직도 걸어온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있고, 인생을 충분히 설계하고 다가갈 수 있다. 


태어나서 10대 까지는 부모의 완벽한 보호가 필요했고, 20대까지는 성숙하지 못한 감정에 에너지를 쏟으며 나를 방전시켰다. 30대는 스스로 내린 결정을 들고 나를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에게 안부를 물어가면서 살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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