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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06. 2024

어쩌다보니 내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나이 마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접하고 수만가지 생각과 걱정이 나를 괴롭히던 작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상담을 받게 되었다. 사실 우연이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하다. 왜냐면 결국 내가 선택했기에 어쩌면 필연이 더 어울린다. 대학원 과제에, 소문에, 자격증 공부에 허덕이며 군대를 나오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작년 초겨울. 전화 한 통이 왔다. 대선배였다. 평소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최근에 박사논문을 통과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전역지원서를 멋지게 던진 조금 많이 멋진 사람이다.


통화는 잘 지내냐는 안부로 시작되었다. 소논문을 쓰고 있다고 우리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로 내 안부를 전했다. 선배는 역시나 나이스하게 나를 격려하였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석사가? 심리학 전공 아니야?"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석사 논문을 쓸 때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물어봤기에 선배님이 내 전공을 아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단지 질문의 포인트를 못 잡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논문은  아시는 것처럼 질적연구로 심층면담 했습니다."

"응, 아니. 저번에 전문상담사 자격증에 관심 있다고 한 거 같아서. 맞지?"


주변에 마음 맞는 다른 선배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했었다. 전문상담사를 취득해서 다른 직장을 구하는 그런 이야기였고 오래전에 나눈 대화였다. 하지만 뭔가 깊게 알아보거나 파지는 않았다.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격증은 취득은 현재로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문화 전공으로 박사 학위로 전공을 틀었기에 상담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오래전에 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은 차근히 설명을 해주셨다. 전문심리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슈퍼바이져에게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직장에서 우리도 잘 알고 지내는 분의 가족분이 정말 유능한 상담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어떤 분이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있어서 알려주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조건을 모두 갖췄고, 지금 공부하는 다문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전화를 받고 이야기하면서 바로 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못했다. 사실 많이 망설였다. 우선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 빨래에 물기를 제거하듯이 짜고 짜서 추가 시간을 만들어 여러 가지 일들을 이미 하고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무엇인가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중요했다. 


관심을 가져준 선배님께 우선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자격증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정말 만만한 자격증이 아니었다. 수련도 180시간 받아야 하고 필기시험에 면접까지 있었다. 게다가 필기는 교재도 없었다. 솔직히 이건 무리이고 한다고 해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에 끌려서 미팅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상담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건 상담사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아주 기본 관문 중 하나였다. 그런데 공부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 보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없었다. 물론 학력은 학사도 상담학과이고 석사도 상담이지만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무늬만 상담 전공이라서 더 부끄럽기도 했다. 적어도 상담에 진심인 사람들이 자격증을 취득해서 상담사가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수련과정을 보니 체계적이었다. 우선 내담자가 되어 슈퍼바이져에게 10회기에 거쳐서 상담부터 받아야 했다. 


'상담을 받는다고..'


머릿속에서 갑자기 묘한 전율이 흘러 가슴으로 내려갔다. 부부관계, 아픈 어머니, 퇴사고민, 자녀양육 등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고 나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나 정말 힘들다고 이마에 지워지지 않는 네임펜으로 써놓고 다니면서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게 요즘 나였다. 강한 척하고 싶거나 티를 덜 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벼랑 끝에 간신히 엄지발가락 하나만 걸치고 있는 게 나였다.


첫 번째 미팅을 마치고 같이 공부하겠다고 했던 분들도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 절대 만만한 자격증이 아니기에, 그리고 고생해서 딴다고 제2의 인생이 비행기 활주로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도 아니기에 표정이 모두 불안해 보였다. 그런 우리에게 선생님은 충분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해줘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짧은 대화에서 조금은 내가 우울해 보인다고 말해주셨다. 우울해 보인다는 말이 마치 위로처럼 들렸다. 만약 심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짧지만 선이 명확한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후 꼬박 2주 동안 고민했다. 확실한 동기가 필요했고, 수련과정을 거쳐서 시간을 채운다고 해도 필기를 공부할 충분한 시간이 될지 계획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에 대한 걱정보다 내 마음은 상담을 직접 받으며 경험하고 싶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병사들을 돌본다고 형식적인 짧은 대화를 수도 없이 기록했다. 물론 그중에는 진심을 다해서 걱정하고 위로해 줬던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에 했다. 그래서 가슴을 다해서 면담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간혹 나를 먼저 찾아오는 병사들도 있었다. 지금은 젊은 간부들이 가끔 사무실 문을 열고 내게 온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말 힘들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특별히 조언해 줄 것도, 어떤 답변을 해 줄 것도 없었다. 그냥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잘할 수 있게 따뜻한 차 한잔과 다과를 내어주고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누구를 찾아가서 잘 앉아 있지 못한다. 그래서 더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살면서 만약 상담을 받아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도움이 되었다. 그랬다면 나중에 자격증을 따서 나처럼 힘들어하는 조금은 소심하고 내성적면서, 욕심이 많고, 약간 특별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내가 너무도 힘들었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서 잘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시간을 소비하긴 했지만 수련 비용이 조금 들고, 자격증 취득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상담 수련을 받기로 결심했다. 


상담을 받으면 어떤 느낌인지 직업 경험하고 싶었다. 분명 그 경험은 지금 내게 도움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필기시험을 공부하면서 상담학에 대해 진심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뭔가는 모르지만 분명 글쓰기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냥 내 감정을 내 방식으로 막 쏟아내는 에세이를 넘어서 뭔가 독자분들에게 실용적이면서 더 논리 있고 도움이 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같이 하기로 하신 분들도 모두 수련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물론 공부나 수련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학회에 가거나 수련과 필기시험을 준비함에 있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어서 더 든든했다. 그렇게 우리는 선생님과 두 번째 단체 미팅을 상담실에 가서 받았다. 가볍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딱딱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물론 선생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앞면이 있고, 알고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훨씬 더 편했다. 그리고 자극도 되었다. 두 분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기에 이런 결정을 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열정을 아직도 간직한 채 고인 물이 아닌 무엇인가를 위해 손을 뻗는 그분들을 보니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왠지 모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선생님은 상담사가 되기 전에 지금까지 대학교에서 상담을 배우면서 알게 된 이론을 직접 적용한 사례가 부족하기에 내담자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신뢰가 갔다. 나는 완벽한 내담자가 될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가슴에 꾹꾹 눌러두고 있었기에 곧 넘쳐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렇다고 낯선 사람들에게 내 속사정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 미팅을 마치고 다음날 바로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상담 날짜를 잡았다. 신기한 것이 날짜만 잡았을 뿐인데 뭔가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순한 호기심도 궁금함도 아닌 뭔가 다른 감정이었다. 그래서 조금 유치하게 나 자신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설렌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약속한 날짜를 기다렸다. 


이상한 것이 그 기다림만으로도 뭔가 무거운 것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너무 힘들면 상담을 받는구나. 너무 힘들어서, 너무 살고 싶어서. 

아무도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담실의 문을 '똑똑똑' 두드리며 열고 들어간다고. 


내가 그 문을 두드린 것처럼. 이렇게 나의 상담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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