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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r 29. 2024

벚꽃 같은 인생은 별로니까.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칙칙했던 땅이 초록색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볼품없던 나무들도 숨겨왔던 우화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벚꽃 축제를 기다리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 반복되는 계절이지만 뭔가 새롭고 다르게 느껴진다. 


사실 어릴 때 꽃과 식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을 볼 여유가 없기도 하고 꽃보다 더 새롭고 소중한 것들이 항상 주변에 생겨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 어설프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꾸준히 가꾸고 관찰하는 것에 대한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 새로움이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자각하고 이내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빠르게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나란 놈이 상담을 받을 용기도 생겼다. 

누가 상담의 기본은 10회라고 했던가. 나는 어느덧 어렵게 문을 열고 시작한 10회기 개인상담을 모두 마쳤다. 어떠한 인연의 고리도 없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시작된 대화는 내게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라는 의미가 점점 작아지고 반복되는 물레방아처럼 계속 누군가에 의해서 돌아갔던 그 불쾌한 느낌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물론 중년으로 가는 중간 길목에서 당연히 경험하는 평범한 시간의 흐름이고 누구나 경험하는 허무함이겠지만 예민한 나라서 더 그 시간이 힘들게 느껴졌던 거 같다. 다행히도 완벽하게 달라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이 먹는 과정이라고 여유를 가지고 조금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한 상담을 마치고 나니 조금은 정의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벚꽃처럼 조급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고. 작고 이쁜 꽃이지만 너무 빨리 떨어져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벚꽃처럼 관심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벚꽃이 빨리 떨어지기에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을 더 받는다. 


그 떨어지는 벚꽃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시간이 너무 짧아서 더 많은 사람들은 축제장에 몰려든다. 나는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만약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을까? 

아마도 언제나 볼 수 있는 꽃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먼 곳까지 운전을 해서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리한 벚꽃은 그것을 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조금함이 나와 적어도 조금은 닮았다. 서둘렀다.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서 조급해했다. 그러니 여유가 사라지고 더 민감해졌는지도 모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멈추면 안 된다고 채찍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친다. 아니 상담을 통해서 어쩌면 내가 원하는 건 편안한 휴식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빨리 떨어지는 벚꽃 같은 인생은 별로인 것 같다. 


오히려 지금 내게는 조금 관심을 덜 받더라도 오랜 시간 꽃을 피우는 그런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가진 문제점들은 조급함과 여유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  완벽의 기준은 모두 자신이 만든다. 결국 무엇이 완벽한지 정의 내릴 수 없기에 끝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비교하고 끝내 아쉬움을 찾아서 스스로 고통을 허락한다. 만약 내가 선택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오랜 시간 지켜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조급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욕심은 가득했고 벚꽃처럼 빨리 떨어져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껍데기를 채워놓고 싶었다. 떨어진 꽃잎이 초라해지는 것처럼 떨어지는 순간에도 발버둥을 쳤다. 그랬다.


상담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물론 자격증 과정 속에 내담자 경험이었지만 나는 진심을 다했다. 건성건성하지 않았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해답을 얻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도 나는 나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조금은 여물어 간다는 것이다.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두려고 노력하고 조금은 더 참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어쩌면 성숙하게 잔잔한 성장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아직 스스로를 젊다고 착각하기에 젊음을 놓치기 싫어서 아쉬움에 징징거리는 게 어쩌면 사십 대의 숙명이고, 늙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젊다고 말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그런 딱 중간 지대에 머문 시기라서 혼란이 방문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많은 변화를 결정한 순간이라서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다. 


21년 매일 출근했던 직장에 사직서를 냈고, 아빠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거움이 나를 억누르고, 아픈 엄마를 간호하고 챙기는 일에 대한 아픔과 휴전선 중간에 서서 그냥 서로 바라보는 것 같은 관계로 살아가는 부부의 문제도 여전히 내 앞에 놓여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불확실한 상태로 둔 채 그 속에 멈춰있다. 내 성격은 참으로 이런 불안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반대로 행동했다. 어디서 이런 용기나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후회로 덮여 허우적 되더라도 이렇게 무모해야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잘 풀리면 풀리는 대로 안 풀리면 그냥 엉켜버린 상태로 잠시는 두려고 한다. 억지로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벚꽃은 되지 말자고. 조금은 못생기고 이쁘지 않아도 그냥 묵묵하게 오랫동안 피어나는 꽃이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이 혼란의 상담일지를 공유하면서 내 생각은 엉망이었다. 잘 정리된 브런치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유는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를 위한 감동이나 메시지가 아닌 그냥 나를 풀어둔 그런 글들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가는 데로 글을 남겼다. 발걸음 가는 대로 앞으로 걷고 싶은 마음에 목적지 없이 흔적을 적었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이런 혼란의 시간도 가지런히 정돈되는 그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한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https://brunch.co.kr/brunchbook/my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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