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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꼭 서울에 집을 사지 않아도 괜찮아.

나도 죽기 전에 내 집이 갖고 싶었다.

by 고용환

중고차를 타고 방화동 사장님을 만나러 핸들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어이구, 왔어요.”
“저 차 한 대 뽑았어요.”
“축하해! 새 차?”
“아니요, 중고로요.”
“잘했네. 좋은 차는 나중에 사도 돼.”
“만족하고 있어요. 잘 굴러가네요.”


방화동 여사장님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다.


“사장님, 아파트…. 제가 시세랑 대출이랑 다 알아봐도 서울에는 죽어도 못 살 것 같아요.”
“그렇지. 근데 뭐 아파트가 서울만 있나. 경기도 있고, 여기저기 다 있지.”
“경기도요?”
“좀만 위로 가면 있는 김포도 한 번 봐봐….”
“김포요? 김포는 훈련 때문에 많이 가긴 하는데….”
“김포 지하철 들어온다고 말들이 오고 가니까. 근데 아직도 엄청나게 싸.”
“그래요? 혹시 김포에 아시는 사장님 있어요?”
“없지. 한 번 둘러봐. 그 잘하는 거 있잖아, 아무 부동산 막 들어가기!”
“하하, 네. 감사합니다. 혹시 빌라 급매 나오는 거 있으면 꼭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이거요.”
“이게 뭐야? 아… PX에서 나올 때 샀어요.”


오천 원짜리 화장품을 건네며 밖에서는 비싼 거라고 허풍을 떨었다. 사장님은 안 받겠다고 하다가 결국 웃으면서 선물을 받았다. 사장님이 보여준 매물도 고맙고, 이것저것 알려준 것에 대한 작은 성의였다.

'꼭 집은 내가 들어가 살아야 할 시기에 살 필요가 없다는 것.'

'좋은 입지에 싸게 나온 집은 먼저 침 발라서 세입자를 구해 두고 기다리면 된다는 것.'


부동산 투자에 기본이 되는 수많은 것과 ‘갭 투자’가 그렇게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셨다. 그래서 항상 고맙고 너무 감사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났다. 나한테 호의적인 사람은 곁에 두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걸 배웠다. 필요할 때 잠시 잘해주는 척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형편이 좋든 나쁘든 언제나 진심을 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언젠가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부동산을 다니며 알게 된 사장님들도 곁에 있는 친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항상 다가가려고 애썼다.




몇 주간 검열받는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행정의 무덤 속에서 야근의 연속이었다. 가끔 총보다 종이로 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은 계급을 떠나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앞에서 왕처럼 굴어도 왕 위에는 언제나 더 높은 왕이 존재했다. 검열은 힘들었지만 나름 내 분야에서 좋은 소리를 들었다.


평소 일을 마무리하면 정리해 두고 리스트를 만들어 둔 덕에 표창장과 휴가까지 받았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은 달콤한 휴가를 임장 하는 데 쓰기로 결심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동안 몸이 근질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휴가가 시작되는 날 바로 김포로 향했다. 평소 훈련으로 수백 번도 더 지나다녔던 익숙한 곳이고, 병사 때부터 철야훈련 · 혹한기까지 행군으로 걸어 다녔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집 앞마당처럼 익숙했다. 차를 몰고 아파트가 많은 곳으로 향했다. 시내라고 해봐야 작았다.


하지만 사우동 주변에 아파트가 몰려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신축 아파트는 없었다. 훈련 때는 산에만 처박혀 있어서 잘 몰랐지만,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대형 할인점도 있고, 나름 큰 병원도 있고, 학원가도 있었다. 이곳 부동산은 생소했지만 그래도 밝은 미소를 짓고 첫 번째 부동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제가 결혼 준비 때문에 아파트를 좀 알아보는데요….”
“아, 그래요?”


언제나 ‘결혼한다’는 거짓말은 잘 먹혔다. 사장님은 나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한방에 내 직업을 귀신같이 맞혔다.


“군인이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에이그…. 짧은 머리에 까맣게 탄 피부에—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도 모두 알아요, 군인이라고. 하하하.”

“아… 네. 하하, 그러네요.”


농담과 웃음이 조화를 이룬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여기 지하철 들어와요?”
“아… 그런 말이 있죠. 근데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래요? 그럼 이번에는 꼭 들어온대요?”
“그것 때문에 여기 아파트, 집 사려고요?”
“아… 아니요. 돈이 좀 부족해서…. 서울은 다음 생에 사야 할 것 같고, 지하철도 들어오면 교통도 좋아질 것 같기도 해서요.”
“뭐든 들어오겠죠. 여기 보는 것처럼 온통 논밭이고 버스밖에 없어서 교통이 너무 불편하니까….”
“아… 그래서 아파트가 싼 건가요?”
“그건 아파트 따라 다른데. 돈은 좀 여유 있어요?”
“목돈 좀 있고, 나머지는 대출받아야죠.”
“뭐 대출 끼고 사면되니까. 군인이라 신용도 좋고 금리도 낮아진다고 하고.”
“혹시 볼 수 있는 물건 있나요?”
“아… 보자…. 몇 평이요?”
“소형이요. 작은 거.”
“아, 결혼한다고 했죠. 그럼 20평대 보면 딱 맞겠네. 공실인 곳이 하나 있고, 다른 건 지금 집에 계시나 연락을 해봐야 하는데…. 잠깐만요.”


경기도라 그런지 사장님은 매우 친절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서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첫날 이렇게 매물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빌라는 많이 봤지만 아파트는 처음이라서 괜히 설렜다.



사장님을 따라서 바로 매물을 보러 나섰다. 어색함은 사라졌다. 결혼식 언제 하냐고 묻거나, 요즘 군대는 어떠냐고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특히 남자 사장님들은 그놈의 초코파이 전우애로 군대 이야기 몇 마디는 금방 경계를 풀고 친절한 조언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곤 만들었다.


물론 예비 신부도, 결혼도 모두 내 머릿속의 상상이지만 언젠가 할 거니까 임장을 위해 거짓말하는 것에 큰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이야기하다가 도착한 아파트는 나름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대충 봐도 90년대 후반에 지어진 듯했다. 사장님은 매물 브리핑을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아파트를 지은 사람처럼 작은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줬다.


“이게 언덕이라 그런데, 보면 단지가 나름 700세대가 넘고—저기 보이죠? 바로 밑에 홈플러스까지 있다니까. 그리고 지대가 높아서 전망이 아주 좋아요. 게다가 공기도 신선하고….”

“아… 아….”


빌라 임장만 하다가 아파트를 둘러보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토끼 눈을 하고 이곳저곳 꼼꼼히 살펴봤다. 무엇보다 경비실도 있고, 주차장 공간도 넓고, 깨끗한 분리수거장에, 나무로 만든 쾌적한 정자, 그리고 놀이터까지 그냥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마치 하나의 작은 성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는 그런 안전한 느낌은 빌라에서는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은 계단뿐이었는데, 승강기로 집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황홀하기까지 했다.


기대하던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상쾌하지 않은 냄새가 진동하며 코를 찔렀다. 사장님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급히 브리핑을 이어갔다.


“이게 공실로 좀 나와 있었죠. 그래서 좀 그런데, 어차피 신혼집이면 리모델링해서 입맛에 맞게 싹 손봐야죠. 그죠?”
“아… 네….”


빌라보다도 못한 내부를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게 낡아 있었다. 최초 지어진 모습 그대로, 수리도 없이 지금까지 살았던 게 분명했다. 실망한 표정으로 안방과 화장실, 발코니를 둘러보는 사이 사장님은 덧붙여 말을 이어갔다.


“으흠…. 그래서 내가 오기 전에 주인집이랑 이야기를 하니까, 공실이고 해서 천만 원 싸게—특별히 군인 총각한테만 해 준다고 하더라고. 그 돈이면 싹 다 고칠 수 있으니까. 서로 좋지.”


계속 나랑 붙어 있었는데 언제 전화를 했다는 건지 의심이 들었지만, 일그러진 내 표정 한 번에 집값이 천만 원 내려가는 게 더 마법 같았다. 한 달에 180만 원도 못 버는데, 거의 반년 치 월급이 시장에서 과일 가격 흥정하듯 떨어지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저기요, 사장님. 이거… 작은 방은 잠겨 있네요….”
“아… 여기 방문 열쇠가 어디 있을 텐데…. 없나 보네. 그럼 우리 다른 집 보러 갈까요? 지금 연락이 왔네. 와도 된다고….”
“네, 사장님.”


작은 방도 보고 싶었지만 다른 매물을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건너편 아파트로 이동하며 사장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어디에 지하철 역이 생긴다고 해요?”
“그건 뭐 모르죠. 여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곳이 될 수도 있고.”
“아, 네….”


두 번째로 도착한 아파트는 왕복 6차선 도로 옆에 있었다. 덩그러니 아파트 두 개만 있었다. 48번 국도를 끼고 있는 나 홀로 아파트였다. 훈련하면서 수도 없이 오고 갔던 국도 옆이라 익숙했다. 단지 내부는 작았다. 전체 세대수가 400세대 정도인, 정말 ‘외톨이’ 아파트였다. 그런데 앞에서 본 아파트보다 내부 관리가 더 잘된 느낌이었다.


“사장님, 이건 연식이?”
“이놈이 아까 그놈보다 2년인가 3년 뒤에 지어졌죠. 그래서 좀 더 비싸요.”


사장님은 바로 18층 버튼을 눌렀다.


“높네요, 18층.”

“여기 전망이 아주 끝내줄 거예요. 아마 선풍기 없이도 여름에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예요.”


18층에 도착하자 집주인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향기가 나는 아늑한 23평 투룸 아파트였다. 사장님 말대로 채광이 정말 예술이었다. 햇살은 거실을 통과해 주방 앞까지 늘어져 있었다. 햇빛의 중요성은 가난한 생활 때문에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두 번째 단칸방도 창문이 작았다. 햇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항상 어두침침해서 뭔가 불편한 공기를 만들어 내는 칙칙한 느낌이었다. 이사 간 빌라도 별다를 게 없었다. 사방이 막혀 있었다. 사람들이 채광이라고 말하며 집 이야기할 때 나는 속으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장님 안내를 따라 큰 방, 작은 방, 발코니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딱 신혼부부가 아이 한 명 낳아 키우기에 좋은 크기였다. 거실과 주방 창문을 열어두니 맞바람이 쳐서 집안에 신선한 공기가 자유롭게 오갔다. 작은 방을 보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내 옷소매를 붙잡고 방에 딸린 베란다 창문으로 끌고 갔다.


“군인 총각, 이것 좀 봐봐요.”


저 멀리 한강이 보였다. 동네 개천보다 작게 보였지만 분명히 한강이 맞았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톤으로 말했다.


“이야~ 한강 맞죠?”
“맞아. 어때요? 이거 나름 한강 조망이여.”


꼭 한강 때문은 아니지만 두 번째로 본 아파트에 반해버렸다. 집은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이 집의 새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97년식이라 낡았지만 여기저기 손보고 예쁘게 꾸미면 아늑하고 좋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내가 집을 보러 다니는 게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투자보다는 나중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조금 서둘러서 사두는 것쯤으로 여겼다. 집을 보여준 아주머니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장님과 함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때요? 두 번째가 더 좋지?”
“네,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사장님, 지하철이 들어와도 큰 도로 쪽으로 날 확률이 더 높겠죠?”
“뭐 그렇죠…. 근데 지하철은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죠. 공사 들어가서 삽 떠도 수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아… 그렇게 오래 걸리는군요. 근데 사장님, 이 집은 얼마예요?”


사장님은 내가 먼저 가격을 묻자, 뭔가 잡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거는 좀 나가죠. 아까 그게 한 장하고 천만 원이었죠? 이건 그것보다 3천만 원 더 비싸지….”


계산을 해보니 1억 4천만 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가진 돈에 대출받아도 사기 힘들 것 같았다. 실망한 내 표정을 귀신같이 감지한 사장님은 바로 미끼를 던졌다.


“그러지 말고 첫 번째 아파트 하라니까. 집주인한테 또 연락해 봤는데, 잘하면 1억에도 가능할 것 같은데. 어차피 평수도 같고, 두 번째 집이랑 도보로 10분 차이밖에 안 나요. 뭐, 안에 더러운 건 싹 뜯어고치면 완전 신축이지, 뭐.”

“아… 네…. 제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은행에도 한 번 더 가봐야 할 것 같고요.”


사무실에서 커피믹스 한 잔을 마시고 인사한 뒤 숙소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1억이 넘는 돈을 주고, 은행 빚까지 져가며 오래된 아파트를 사는 게 맞는지 묻고 또 물었다. 막상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스물여섯—아직 여자친구도 없고, 결혼 언제 할지도 모르는데 덜컥 집을 먼저 사는 게 미친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걸리는 것은 거액의 빚이었다.




뭐든 일찍 시작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건 경험을 통해 이미 배웠다. 자퇴하고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 내게 득이었는지 독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회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버렸다는 것이었다. 순수함을 잃어버리면 현실이 다가온다. 자본주의의 노예인지, 주인인지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하며 정해진 돈을 받고 살아가는 삶. 주도권이 없이 누가 무엇을 던지면 열심히 달려가서 주워야 하는 삶. 이런 인생은 차리리 늦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 저녁, 마침 선후배들과 술자리 약속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술집에 들어가자 박선배가 나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짓하며 말했다.


“어~ 고 중사.”
“네, 선배님.”
“어디 다녀와? 옷이 깔끔하네.”

“선배님, 이런 면바지도 있으십니까?”


후배인 김 중사 녀석은 100만 원이 넘는 시계를 위로 들어 올리며, 비웃듯이 비야냥 거렸다. 그 말에 감정이 상했지만 태연하게 반응했다.


“당연히 있지. 면바지 한 개가 없겠냐.”


나름 친한 사이였다. 선후배라고 해도 서로 한 살씩 차이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전우였다. 힘들면 제일 먼저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도울 일 있으면 두 손 두 발 다 동원해 돕고, 손익을 따지는 계산은 전혀 할 필요 없는—진정한 전우이자 단물 같은 존재였다.


술잔을 비울수록 언제나처럼 끝도 없는 군대 이야기로 쏟아졌다.


어디 지휘관이 바뀌었다느니, 어느 부대로 어떤 주임원사가 갈 거라느니….

그날따라 이야기에 끼기 힘들었다. 머릿속은 온통 ‘집을 어떻게 살지, 사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 떠올랐다. 결국 머릿속에 돌고 돌던 말은 나도 모르게 혀를 타고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 집 한 채 사려고….”
“뭐? 미친놈….” 선배가 발끈했다.

박선배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도 본 듯 불끈하며 말했고, 후배는 돈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집을 삽니까? 어디에? 선배 돈은 있습니까?”
“뭐, 은행에서 빌려야지.”

“미친놈아, 대출 끼고 집 사면 나중에 망해. 너 빚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잖아? 아빠 때문에도 그렇고?”

순간 선배 입에서 아빠 이야기가 나와 당황스러웠지만, 감출 것 없이 4년 동안 지내 온 터라 그냥 넘겼다.


“그건 아는데, 우리 아빠 빚이랑 집 사는데 은행에서 빌리는 빚은 완전히 달라.”
“완전 돌아이네. 돈을 빌리면 그게 빚이여. 너 요즘 학사 딴다고 컴퓨터로 인터넷 강의 듣더니 머리가 돌았네.”
“선배님, 뭐 학사를 따려고 합니까? 회사원입니까? 계속 따게?”


후배는 박선배의 말을 받아서 조롱하듯 나를 자극했다.


“부사관 지원 자격이 고졸이라고 평생 고졸로만 있으라는 건 아니잖아!”


결국 대꾸하기를 포기했다. 아니, 내 생각을 이어 말했다가는 남북한이 싸우듯 끝도 없는 싸움이 날 것 같았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를 논하자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후회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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