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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Oct 22. 2021

웅녀가 백일 동안 먹은 단군신화의 산蒜이 마늘일까?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 무릇 인간의 3백 6십여 가지의 일을 두루 맡아 다스렸다. 이때 한 곰과 한 범이 한 동굴 속에서 함께 살면서 항상 신인神人 환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 하기를 원하였다. 신인은 곧 신령스러운 쑥(艾) 한 줌과 마늘(蒜)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 모습을 얻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 먹고 기忌한지 삼칠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잘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여熊女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매양 신단수 밑에서 잉태할 수 있게 하여 줄 것을 빌었다. 환웅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뒤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단군壇君 왕검王儉이라 불렀다. 당요가 제위에 오른지 쉰해가 되던 경인庚寅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이 글은 삼국유사 첫머리의 고조선 건국신화이자 단군왕검의 탄생설화에서 인용했다. 반만년 전에 곰이 애艾와 산蒜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이 두 식물은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어야 한다. 애艾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쑥(Artemisia indica Willd.)으로 보는데 무리가 없지만 산蒜이 마늘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마늘(Allium sativum L.)은 원산지가 중앙아시아 지역이고 고조선이 건국될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전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늘, 2020.7.18 청계산 옛골마을


<본초강목>에서는 산蒜을, “중국에 처음에는 산蒜이 있었는데 후에 한漢나라 사람이 서역에서 호산胡蒜을 구해오면서 산蒜을 소산小蒜이라고 하여 호산胡蒜과 구별하였다. 그러므로 복후伏侯(崔豹)가 고금주古今注에서 ‘산蒜은 묘산茆蒜이다. 속칭 소산小蒜이다. 오랑캐 나라에 한 뿌리에 10개의 종자가 있는 산蒜이 있는데 이름을 호산胡蒜이라고 한다. 속칭 대산大蒜이 이것이다’라고 말했다. … 재배하는 산蒜에는  종류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모두 작고 꽃잎이 적으며 몹시 매운 것이 산蒜인데 소산小蒜이라고 한다. 뿌리와 줄기가 크고 꽃잎이 많으며 맵지만 단맛을 띤 것이 호葫이며 대산大蒜이라고 한다. … 장건張騫(?~B.C.114)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갔을 때 비로소 대산大蒜 씨앗을 얻어서 돌아왔다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한 글자로 산蒜을 쓴 것은 원래 중국에 있던 것이고, 호葫 즉 대산大蒜이 한나라 때 서역에서 들어온 후 소산小蒜으로 구별하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서역에서 온 대산大蒜이 바로 우리가 식용하는 마늘(Allium sativum L.)이므로, 단군신화의 산蒜은 마늘이 아닌 것이 분명해지고, 소산小蒜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산달래 꽃, 2013.6.1 성남 텃밭

<중약대사전>에서 소산小蒜은 Allium scorodoprasum L., 혹은 산산山蒜이라고도 하는 Allium nipponicum Franch. & Sav.이다. 또한 일본의 연구서인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마찬가지로 산蒜을 중국명 소산小蒜(Allium scorodoprasum), 혹은 산산山蒜(Allium grayi Regel)으로 본다. Allium nipponicum Franch. & Sav.나 Allium grayi Regel은 Allium macrostemon Bunge의 이명인데, Allium macrostemon Bunge는 우리나라 식물도감에서 산달래로 부른다. 하지만 Allium scorodoprasum L.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 <한반도자생식물영어이름목록집> 학명이 Allium scorodoprasum var. multibillosum Y.N.Lee 조선마늘이 나오는데, Allium scorodoprasum L. 이명으로 자생지는 유럽으로 알려져 있어서 우리나라 자생종인지가 확실하지 않으며, 마늘(Allium sativum L.)의 아종으로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일단 단군신화의 蒜을 소산小蒜이나 산산山蒜이 가리키는 식물 중 우리나라에 확실히 자생하는 산달래로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좌) 산마늘, 2021.5.9 성남, (우) 산부추, 2021.10.9 정선


<훈몽자회> 산蒜을 “마날 , 일명 호葫이다.  小蒜은 달뢰, 야산野蒜은 죡지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본초강목> 설명과 일치하며, 호葫는 호산葫蒜,  마늘이다. <동의보감탕액편>에서는 소산小蒜은 ‘족지라고 우리말 훈을 달았는데, ‘족지혹은 ‘죡지 달래의 고어로 알려져있다. <광재물보> 산蒜을 소산小蒜으로 설명했고, <물명고>에서는 소산小蒜을 ‘달내 보았다. 한편, 윤서석尹瑞石은 이 단군신화의 산蒜에 대해, <한국식품사연구, 1974>에서 “艾[쑥]과 蒜[마늘]이 우리 原始人들의 食用蔬菜의 하나였으리라 추측된다. 여기에 있는 蒜은 지금의 큰마늘이 아니고 산마늘·산부추·달래 따위의 野蒜類일 것이라 한다.”고 하여 이덕봉李德鳳의 <韓國生物學史>를 인용하고 있다. 이덕봉이 추정한 세 종의 식물 중에도 달래가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과 같은 큰마늘이 高麗時代에 재배되고 있었다”고 설명하여 적어도 마늘은 고려시대나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산부추, 2020.10.17 남한산성


산달래(Allium macrostemon Bunge)는 우리가 그냥 ‘달래’라고 부르는 봄나물이며 5~6월에 풍성한 꽃차례가 달린다. 이에 반해, 달래(Allium monanthum Maxim.)는 4월에 꽃이 피며 꽃줄기 하나에 두어 개의 꽃이 성글게 달린다. 몇 해 전 6월 초, 성남의 어머니 텃밭에서 자잘한 꽃이 모여 풍성한 공 모양을 이룬 예쁜 꽃차례를 보고 궁금하여 식물도감을 이리 저리 뒤지다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 밭에 예쁘게 뭉치로 피어있는 꽃이 뭐예요? 부추는 아니고..."라고 여쭈었더니, "달래, 그거 달래 꽃이다."하셨다. 어릴 적부터 달래 냉이 씀바귀를 봄나물의 대명사로 말해왔고, 실제로 밭 가에서 달래를 많이 캐어 먹었건만, 그 꽃 모양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흑백 <대한식물도감>에서 달래를 찾았더니 꽃 모양이 많이 달라서 헷갈렸는데, 김태영 선생이 꽃 사진을 보고서 산달래라고 알려주었다. 즉, 우리가 흔히 봄나물로 들에서  먹는 달래를 식물도감에서는 줄곧 산달래로 표기한 것이다. 이는 <조선식물향명집>에서 “Allium nipponicum Franchet & Savatier”에 산달래라는 이름을 부여한 이후부터인 듯하다.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이렇게  이유가, 산달래의 학명이 “Allium nipponicum Franchet & Savatier” 기재되어 있는데, ‘nipponicum’이라는 일본을 상징하는 이름 때문에 차마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는 ‘달래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를 주저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근거 없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본다. 대신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향명집 저자들은 “Allium monanthum Maximowicz”에 달래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지금까지 단군신화의 산蒜이 우리나라에 자생한 식물이라는 가정 아래 ‘산달래 아닐까라고 추정해보았는데, 이는 소산小蒜이나 산산山蒜이라는 글자의 용례를 중심으로 추정해본 것이다. 물론 이덕봉 선생이 추정했듯이 산마늘이나 산부추일 가능성도 남아있고, Allium속의 여러 식물을 통칭할 수도 있다. 신화의 식물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 “봄맞이 가자 말해주듯이 달래 혹은 산달래는 우리 민족의  먹거리로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산달래, 2016.10.3 여주 시내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2020.7.25 끝>


*昔有桓因庶子桓雄 …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 都平壤城 始稱朝鮮 – 삼국유사신역

**蒜 … 中國初惟有此 後因漢人得胡蒜 於西域 遂呼此為小蒜以別之 故伏侯(崔豹)古今注云 蒜 茆蒜也 俗謂之小蒜 胡國有蒜 十子一株 名曰胡蒜 俗謂之大蒜是矣 … 時珍曰 家蒜有二種 根莖俱小而瓣少 辣甚者 蒜也 小蒜也 根莖俱大而瓣多 辛而帶甘者 葫也 大蒜也… 唐韻云 張騫使西域 始得大蒜種歸 – 본초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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