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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ug 06. 2021

한 없이 큰 부모님 은혜와 재쑥, 사철쑥, 제비쑥

아莪, 호蒿, 위蔚

초등학교 시절에 선친으로부터 <명심보감>을 배웠다. “자왈子曰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는 아마도 수백 번은 족히 읽었을 터이다. 명심보감에서 이 문장과 함께 내 뇌리에 박힌 문장이, 효행편의 “시왈詩曰 부혜생아父兮生我하시고 모혜국아母兮鞠我하시니 애애부모哀哀父母여 생아구로生我劬勞삿다 욕보심은欲報深恩인대 호천망극昊天罔極이로다”*이다. 어머니가 아니라 왜 아버지가 나를 낳았다고 했는지가 참으로 의아했기 때문에 뇌리에 박힌 것인데, 이 문장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부모님이 나를 낳아 기른 은혜는 다 갚을 길이 없겠구나 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명심보감>의 이 시는 바로 <시경>의 小雅, 곡풍지습谷風之什에 실려있는 ‘륙아蓼莪’이다. 부모의 은혜를 노래한 시라서 고전에서 수없이 인용된 유명한 시인데, 이가원 번역으로 첫 두 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게 새발쑥인가

匪莪伊蒿           새발쑥이 아니라 다북쑥이네.

哀哀父母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께서

生我劬勞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네.


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게 새발쑥인가

匪莪伊蔚           새발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哀哀父母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께서

生我勞瘁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여위셨다네.

 

제비쑥, 2020.6.20 남한산성

륙아’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비유하기 위해 사용한 식물인, 아蒿, 위蔚를 각각 새발쑥, 다북쑥, 제비쑥 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책을 보면 이를 다북쑥, 약쑥, 왕쑥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우리 고어의 보고인 <훈몽자회>에서는 호蒿를 ‘다복쑥’으로 훈을 달고 있으므로 이 영향으로 다북쑥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그러나 <훈몽자회>에는 아莪는 나오지 않으며, 울蔚은 ‘눈비얏 울’로 나온다. 눈비얏은 익모초의 고어이므로 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위蔚라는 글자는 이 시에서처럼 쑥의 일종으로 쓰일 경우 위蔚로 발음하는데, 이는 <시경언해>에서 ‘위’로 음을 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한식물도감>을 살펴보면 제비쑥은 있지만 다북쑥이나 새발쑥, 약쑥, 왕쑥 등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약쑥은 ‘사재발쑥’과 더불어 ‘쑥’의 이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복쑥과 비슷한 ‘다북떡쑥’이라는 풀이 있으나 이 풀은 다북떡쑥(Anaphalis)속에 속하는 식물로 쑥(Artemisia) 속의 식물과는 다르므로, 호蒿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륙아’의 蒿, 위蔚에 대한 고전 번역 상의 식물 이해가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새발쑥이니 다북쑥이니 하는 이름이 우리 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적절한 뜻풀이였다고 하더라도 현대의 식물 분류에 입각한 정확한 이름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식물들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보면, 반부준은 <시경식물도감>에서, 아莪는 재쑥(Descurainia Sophia [L.] Webb. ex Prantl.), 호蒿는 개사철쑥(Artemisia apiacea Hance), 위蔚는 제비쑥(Artemisia japonica Thunb.)으로 설명한다. 한편 <중약대사전>을 살펴보면 아莪는 나오지 않고, 시경의 호蒿는 현대 중국명 청호靑蒿, 즉 개사철쑥이라고 했고, 위蔚는 현대 중국명 모호牡蒿, 즉 제비쑥으로 설명한다. <식물의한자어원사전>에서도 시경의 호蒿를 개사철쑥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참조하여, ‘륙아’의 아莪를 ‘재쑥’, 호蒿를 ‘개사철쑥’, 위蔚를 ‘제비쑥’으로 해석한다면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개사철쑥, 2011.7.23 성남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훈몽자회>의 ‘다복쑥’은 ‘개사철쑥’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훈몽자회>의 호蒿에 대해 설명 전체를 보면, “‘다복쑥 호’. 속칭 호초蒿草. 또한 봉호蓬蒿, 청호靑蒿이다. ‘배양’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봉蓬에 대해서도 ‘다복쑥 봉’으로 설명했다. 즉 <훈몽자회>의 이해에 따르면 호蒿와 봉호蓬蒿는 같은 종류의 쑥이고, 이명으로 청호靑蒿, 우리말로 ‘배양’인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명 청호靑蒿는 개사철쑥을 가리킨다. 한편 <훈몽자회>에는 애艾가 ‘쑥 애’로, 번蘩도 “‘쑥 번’, 백호白蒿”로 나온다. 한자로 번蘩이나 백호白蒿는 산흰쑥(Artemisia sieversiana Ehrh. ex Wildd.)을 말한다. 그리고 최세진은 <사성통해>의 번蘩 주석에서 ‘다복쑥 봉호蓬蒿’라고 했고, <중약대사전>도 蓬蒿를 백호白蒿의 이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상 기록으로 추론해보면, 다복쑥/다북쑥을 봉호蓬蒿에 대한 우리 옛말로 이해할 수 있다. 봉호蓬蒿에 대응되는 현대 이름이 개사철쑥과 산흰쑥이므로, 다북쑥을 개사철쑥이나 사철쑥, 산흰쑥 등 이곳 저곳에서 다복다복하게 자라는 쑥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철쑥, 2021.9.4 평창

아莪, 즉 재쑥은 <본초강목>에 늠호䕲蒿, 아호莪蒿로 나오는데 이명 중 하나가 포낭호抱娘蒿이다. 이 포낭호는 <식물본초>에 “잎을 먹는다. 모여 나므로 이름이 붙었다. 2, 3월에 채취하여 익혀 먹는다.”***라고 나오고 <본초강목>에도 “잎을 먹을 수 있다. 쪄서 먹을 수도 있다. 향이 좋아서 자못 루호蔞蒿와 비슷하다.”****라고 나오므로, 중국에서 식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륙륙자아蓼蓼者莪 비아이호匪莪伊蒿’를 파릇 파릇하게 자란 저 풀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재쑥이 아닐까 하고 봤더니 개사철쑥이나 제비쑥이어서 조금 실망스럽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개사철쑥과 제비쑥도 사철쑥, 참쑥과 더불어 모두 먹을 수 있는 쑥이지만 맛이 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륙아’를 다시 읽어 본다.

 

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게 재쑥인가

匪莪伊蒿           재쑥이 아니라 개사철쑥이네.

哀哀父母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께서

生我劬勞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네.


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게 재쑥인가

匪莪伊蔚           재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哀哀父母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께서

生我勞瘁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여위셨다네.

 

之罄矣           물병이 비게 되면

維罍之恥           항아리에게 부끄럽네

鮮民之生           가난한 사람의 생활은

不如死之久矣     일찍 죽어버리는 것보다도 못해라.

無父何怙           아버님 안 계시면 누구를 의지하고

無母何恃           어머님 안 계시면 누구를 믿으랴?

出則銜恤           밖에 나가면 부모님 걱정

入則靡至           안에 들어와 안 계시면 갈 곳 없는 듯해라.

 

父兮生我           아버님 날 낳으시고

母兮鞠我           어머님 날 기르시니

撫我畜我           쓰다듬으며 길러 주시고

長我育我           키워 주시고 감싸 주셨네

顧我復我           돌아보시고 되돌아보시며

出入腹我           드나들 적마다 품어주셨으니,

欲報之德           그 은혜 갚으려 해도

昊天罔極           하늘이 무정하셔라.


쑥, 2020.10.17 남한산성

봄철이면 쑥을 캐어 국을 끓여 먹고 쑥떡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는 쑥 종류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쑥과 참쑥, 사철쑥, 개사철쑥, 제비쑥, 개똥쑥, 산흰쑥, 물쑥 등을 알아보기 위해 도감을 뒤적거려 보지만 아직 멀기만 하다. 어렸을 때 배웠던 <명심보감>의 이 시가 요즈음 가끔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가까이 성남에 사시는 어머니도 이제 연로하셔서 해마다 기력이 떨어지신다. 올해에는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위험 때문에 출입도 자유롭지 못하여 집 안에 반 년 이상 칩거하시니 건강 유지가 더 어렵고, 이런 저런 질병이 침범하고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은 없어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그저 자주 찾아 뵈면서 건강히 오래 오래 사시길 기원할 뿐이다.

<2020.8.23. 끝>


*<시경>에 말하였다. 아버지 나를 나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셨도다. 그 깊은 은혜 갚고자 하면 하늘과 같아 다함이 없도다. – 명심보감

**  蒿 ‘다복쑥 호’ 俗呼蒿草 又蓬蒿, 又靑蒿 ‘배양’ - 훈몽자회

*** 抱娘蒿, 食葉 叢生故名 二三月采之 熟食 – 식물본초食物本草. 

****䕲蒿, 莪蒿 蘿蒿 抱娘蒿 … 葉可食 又可蒸 香美頗似蔞蒿 – 본초강목

(표지사진-사철쑥, 2021.9.4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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