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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무늬와 빛깔의 문목文木, 비자나무

비榧

by 경인

彼美玉山果 아름다운 옥산과玉山果가

粲為金盤實 금 쟁반 위 열매로 빛나네

瘴霧脫蠻溪 남만의 계곡, 독한 안개를 벗어나

清樽奉佳客 맑은 술잔과 귀한 분께 바쳐졌네

客行何以贈 나그네 가시는데 무엇을 드리나

一語當加璧 한마디 말을 보배로 삼으시게

祝君如此果 그대는 이 열매처럼

德膏以自澤 덕이 넘쳐 스스로 윤택해지시게

驅攘三彭仇 원수 같은 삼시충三尸蟲을 몰아내어

已我心腹疾 내 마음과 뱃속의 근심을 그치게 해 주시게

願君如此木 그대는 이 나무처럼

凜凜傲霜雪 늠름하게 서리와 눈을 견디시게

斵爲君倚几 베어서 그대의 궤안几案을 만들면

滑淨不容削 깔끔하여 깎아낼 곳이 없다네

物微興不淺 하찮은 물건이나 흥치興致는 얕지 않으니

此贈毋輕擲 내가 시를 가벼이 버리지는 말게나


당송 팔대가 중의 한명인 소식蘇軾(1036~1101)의 시, ‘정호조를 전송하며 자리에 있는 과실 중 비자에 대해 읊다 (送鄭戶曹賦席上果得榧子)’이다. 이 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비자나무로 만든 앉은뱅이 책상, 즉 비궤(榧几)는 좋은 가구일 뿐 아니라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종종 고전에 나타난다.


비자나무열매-IMG_6152-20201115제주도.JPG 비자나무 열매, 2020. 11. 15 제주도

예부터 우리나라에도 이 비자나무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가서 저술한 책으로 1123년에 간행되었다고 알려진 <고려도경>의 토산土産 편에, “또 앵두(含桃)가 있으나 맛은 식초와 같이 시다. 개암(榛)과 비자(榧)가 가장 많다고 한다”*고 쓰여져 있다. 즉, 우리나라에 비자나무가 많음을 언급한 것이다. 허목許穆(1595~1682)의 <미수기언>에, 겨울에도 푸르고 오래 사는 나무와 풀, 돌 등 열 가지로 정원을 꾸미고 쓴 글인 ‘십청원기十靑園記’가 있는데, 십청의 하나로 비자나무(榧)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비자나무(榧), 남해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 옥비玉榧라고 하고 옥산과玉山果라고도 한다. 또한 적과赤果라고도 한다. <설문>에서 ‘문목文木’이라고 했다. 그 나무의 맛은 달고, 잎은 겨울에도 푸르다. 산비山榧의 하나이다. 산비는 총생叢生하고 키가 크지 않다.”**


비자나무잎-20180414-여수금오도.JPG 비자나무, 2018. 4. 14 여수 금오도

이제 우리나라의 비자나무(Torreya nucifera [L.] Siebold & Zucc.)가 소동파의 시에 나오는 비자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비자는 구충제로 사용되었으므로 <본초강목>에 비자열매(榧實)로 나온다. 일부 내용을 인용해보자. “그 나무 이름은 문목文木인데, 아름다운 무늬와 고운 빛깔을 지녀서 비榧라고 했다. 신주信州 옥산현玉山縣에서 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친다. 그래서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저 아름다운 옥산과玉山果가, 금 쟁반 위 열매로 빛나네 彼美玉山果 粲為金盤實 粲為金盤實’라고 했다. … 비榧는 깊은 산 속에 자라며, 사람들이 야심野杉이라고 한다. … 피柀는 삼杉과 비슷하지만 삼杉과 다르다. 피彼는 좋은 열매가 있고 나무의 무늬와 빛깔이 아름답다. 그 나무는 동桐과 비슷하고 잎은 삼杉과 비슷하다. 몹시 천천히 자란다. 암수딴그루이며 수나무에 꽃이 피고 암나무에 열매가 달린다. 겨울에 황색의 원형 꽃이 피고 결실한 열매의 크기는 대추 정도이다. 그 씨는 길이가 감람橄欖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훈몽자회>에, “榧, 비잣비”로 나온 후, <자선석요>, <한선문신옥편>, <한일선신옥편> 및 현대의 <한한대자전> 등 모든 옥편에 “비자나무 비”라고 설명하여 혼동은 없었다. <물명고>와 <광재물보>에도 비자榧子를 우리말로 ‘비자’로 설명하고 있고, 특히 <광재물보>는 <본초강목>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본초강목>의 비榧를 <중국식물지>나 <식물의한자어원사전>은 중국명 비수榧樹(Torreya grandis Fort. ex Lindl., 이명 야삼野杉, 소과비小果榧 등)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비자나무(Torreya nucifera [L.] Siebold & Zucc.)는 일본비수日本榧樹라고 하는데, 중국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비자나무_MG_3239-20190323-장성백양사.JPG
비자나무수구화수-IMG_3671-20190406해남.JPG
(좌) 비자나무 암그루, 2019. 3. 23 백양사. (우) 비자나무 수구화수, 2019. 4. 6 해남

이렇듯,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비榧는 비슷하지만 다른 나무를 지칭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비자나무와 우리나라 비자나무는 다같이 주목과의 비자나무속(Torreya)에 속하는 나무여서 약효도 비슷했던 듯하다. 고전을 번역할 때 엄밀하게 종(species)을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비자나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이재유고頤齋遺藁에 나오는 ‘비자榧子에 대해 고풍古風으로 지은 부賦’의 일부를 감상한다. 김이신金履信(1723~?)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 황윤석이 전송하면서 써 준 시이다.


江南有榧樹 강남에 비자나무가 있으니

乃在白羊山 곧 백양산에 자란다네.

亭亭梁棟幹 우뚝하여 동량의 재목인데

鬱鬱霜雪顔 울창하여 서리와 눈 같이 결백한 모습이네

斲几文章爛 궤안几案을 만들면 문장은 빛나니

倚之寧不歡 그것에 의지하면 어찌 기쁘지 않으랴

况復多佳實 하물며 좋은 열매도 많으니

臭味無鹹酸 냄새와 맛이 짜고 시지 않다네

凉秋八九月 서늘한 가을 팔 구월에

可獨充杯盤 홀로 쟁반에 가득 채울 수 있으리

三彭衆所病 삼시충三尸蟲으로 모두 괴로운데

寸白方成癏 촌충寸蟲으로 바야흐로 병이 걸릴때

但令一咬罷 한번 깨물어 치료하게 하면

心腹頓能安 마음과 뱃속이 곧 편안해지네


비자나무-2019323장성백양사.JPG 비자나무, 2019. 3. 23 장성 백양사 입구

작년 봄 3월 하순에 나는 회사 동료들과 남도의 영광, 장성 지방을 둘러본 적이 있다. 이때 백양사에 들러 만개한 홍매紅梅인 고불매古佛梅를 감상했다. 그 백양사 초입에 굴거리나무와 비자나무 숲이 있었다. 이른 봄,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짙푸르게 우뚝 서 있는 비자나무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서 뒤늦게 시든다는 송백松柏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비자가 여물어가고 있는 이 백양산 비자나무 숲은 예부터 유명했나 보다.


<끝 2020년 5월 말>


* 亦有含桃 味酸如酢 榛榧最多云 – 고려도경

**榧, 生南海上者佳 曰玉榧 又曰玉山果 亦曰赤果 說文曰 文木也 其木甘 其葉冬靑 山榧一也 山榧 叢生不高 – 미수기언

***榧實, … 其木名文木 斐然章采 故謂之榧 信州玉山縣者爲佳 故蘇東坡詩云 彼美玉山果 粲為金盤實 … 榧生深山中 人呼爲野杉 … 似杉而異於杉 彼有美實而木有文采 其木似桐而葉似杉 絕難長 木有牝牡 牡者華而牝者實 冬月開黃圓花 結實大小如棗 其核長如橄欖 - 본초강목

참고: 비자나무는 나자식물이므로 비실榧實을 비자 열매가 아니라 비자 종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번역시 종자로 해야할지, 열매를 그대로 두어도 좋을지 더 생각해봐야겠다.

+표지사진, 비자나무, 2020.11.15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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